사실은 누군가 손을 잡아주길 바랬다. ​

by 온유
각자도생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



나는 언제부터 이 말을 신념처럼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을까?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했건만, 오라는 곳은커녕 면접의 기회도 하늘의 별따기였던 취준생 시절이었을까? 저녁밥 7천 원짜리 야근을 일상처럼 보내고 밤샘에 새벽 출근하며 1년을 보냈더니, 연봉협상 자리에서 "그러게, 주어진 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새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어야죠."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을까. 몇 년을 수련하며 준비한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싸인을 안 해줘서 시험의 기회조차 박탈당할 뻔했던 그때일까. 공식적으로 성인이 된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간 몇 차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그 날마다 나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같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을 탓하지 못했다. 세상을 탓해버리면 계속 실패한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될까 봐. 남을 원망하는 사이 더 나락으로 떨어질까 봐. "결국 내 인생을 책임지는 건 나야.", "나는 성인이니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개척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정신 더 바짝 차리라고 채찍질을 해댔다.


그런 게 세상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만성적 불안을 지니고, 늘 내가 잘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하고, '내 인생의 책임자는 나뿐이니까'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하고, 실수 없이 살기 위해 능력을 120%로 발휘하려 애쓰며, 한 켠의 씁쓸함은 고이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대한 섭섭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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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또 한 번 내 힘을 200% 발휘해서 넘고 싶은 산이 있었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종 불안이 찾아왔고, 예민해졌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일상의 긴장감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나는 습관처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이로제 걸린 사람처럼 빠짐없이 준비를 하고, 그 어떤 함정에도 걸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진실된 말을 건네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도와줄 수도, 혹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자리에 계신 분이었다. 같은 권력의 자리에서 나를 삿대질하듯 이리저리 판단하던 분에게 세게 데인 후였다. 처음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고, 며칠 지나니 잠이 잘 왔다. 알게 모르게 늘 함께하던 불안이 쑤욱 내려갔다. '내가 함정에 빠지면 건져줄 누군가가 있어.'라는 믿음이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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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무리하는 늦은 저녁시간. 방에 홀로 앉아 불안이 낮아진 나를 알아차렸다. 고마운 마음을 가만히 느껴보다가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았던 날들이 떠올랐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실컷 울고 난 뒤 깨달았다. "사실은 누군가 나에게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어주기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외롭게 홀로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 왔구나."


내가 쓰는 글이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과 같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나에게 관심 없는 '남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중 한 명쯤은 진솔하게 손길을 내밀어 줄 '우리'가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