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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28. 2023

결혼의 의미와 상징

결혼의 의미와 상징,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한 달 전 우린 이 문장을 두고 영종도 앞바다에 가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끝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으니 그럴 거면 그냥 하자-'에 가볍게 다시 한번 결혼을 결심했고 여까지 왔다. 하지만 오늘 혼인교리를 듣다가 당시에 이 말이 여전히 있었던 두려움의 다른 말이었다는 걸 만났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당시엔 맞는 말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말엔 이곳의 땅, 사회를 빼고선 뱉어냈던 말이었다. '우리의 존재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그러나 사회에서는 잘 모르겠어.' 밟고 있는 이 땅을 빼고선 뱉어냈던 이었다. 여기엔 여전히 이 땅에선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 교묘히 섞여 있었다.


그렇게 흘러와 기어코 결혼식을 진행시키고 있고 결혼을 얼마 안 남아 두고 있는 지금, 세상을 받아들이니 난 이제 결혼이 정말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아주아주 축복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개인적으로 사랑의 역사와 배움의 관점에선 이건 놀라운 일이다! 둘이 하나가 되기로 약속한다는 것은 날 포기하는 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엔 사랑이 있다. 나의 죽음과 책임을 안고서도 결국 나아가게 하는 힘이 사랑임을 만났고 이렇게 그저 결혼을 하고 있음- 이 자체가 보이지 않는 우리 사랑현현임을, '사랑함'물리적인 구현이 이 땅의 결혼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나는 것을 알았다.


또 하나 그냥 사는 것이지만 배움의 관점에선 이건 참 재미난 우주의 세팅이다. 내 가슴을 떨리게 하시는 그대를 만나 사랑을 배웠고 우린 결혼을 창조했다. 하지만 상상력을 펼치면 결혼 이후론 끊임없이 나와 다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 예상된다. 너와 나는 분명 다른 존재이니까. 그렇다고 벗어날 수도 없다. 우린 묶이기로 결심했으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출발점으로부터 아이러니하게 '그것이 비록 너라도' 나를 지키며 나를 죽이는 과정이 시작된다. 묶여있기에 끊임없는 다름에 대하여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만이 서로가 살아날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죽여야 하기에 고통이 창조되는 이 아이러니를!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그대를 알아가는 과정. 수용하며 나를 죽이는. 역으로 이 과정이 나를 키우는. 한 바퀴 돌아 사랑에 사랑을 배우는 진짜 판의 시작이 결혼이라는 건가 보다.


이에 연인은 말했다.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배움의 시작이 만약 사랑하는 이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시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뒤돌아버리고 말테니까. 안 보면 그만이니. 사랑하는 자로부터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 시작의 현현이자 상징이 또 결혼인 것이다.



한편 타인, 사회와 관계되는 관점에서 결혼은 이 자체로 삶의 신비에 대한 내 과거와 앞으로 대한 리츄얼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과거로부터 흘러온 시간들로 날 비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난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태어난 거밖에 한 게 없는 내게 이곳까지 데려다주신 부모님과 여러 인연들. 고통스러움의 시간 속 만남에 대한 회고와 날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지금, 내 성장을 지켜봐 주는 인연들에 대한 또 다른 감사함.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저 나라는 이유로 모든 것들이 자리 잡아주었고 도와주었음을 이 결혼이 아니었더라면 난 결코 몰랐을 것이다. 또한 이곳까지 흘러온 나에 대한 경배, 우리의 만남이 성사되고 흘러온 시간 속에서 지켜오고 키워온 사랑에 대한 경배. 그리고 하나 더 결혼엔 사회에 대한 사랑과 경배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동거로도 괜찮은 우리지만 그래도 굳이하겠어. 이 말엔 당연히 이 사회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들어있던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 이었던 것이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니 그 말은 이제 내겐 맞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 사회를 이루는 우리 아빠 엄마처럼 우리의 모든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과도 같이. 결혼을 한다는 것엔 사회를 이루어온 역사와 존경이 이미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젠 나도 기꺼이 책임지는 삶을 시작하겠다-의 존경과 결심의 상징이 결혼이다.






나의 과거, 나의 사람들, 내가 밟는 땅, 그 모든 것들을 존경하고 사랑함 그것의 현현이 결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난 우리의 사랑을 걸고 이곳에서 결혼을 올려보고 싶다! 결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그런데 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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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결혼을 초대합니다. 

.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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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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