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말을 아꼈던 건데 사랑할 기회조차 나누지 않았던 것을, 네가 다칠까 말을 사렸는데 사랑을 달라고 요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알았다.
침묵 속에 상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너라는 핑계로 나를 둘러싼 성벽이었고. 더 속말은, "그래서 날 드러냈을 때 네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가 기대하시는 정직한 말이라면야. 같은 말로 나 조차도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들켜버렸다.
침묵의 사랑은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사랑이지만 결국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걸 담기에 그렇기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자기 세상에 갇힌 사랑임만이 돼버리는 것이 들통나버렸다.
침묵의 빛,
"네 소리를 내야 해-"라고 누군가 외쳤을 때, 내 진짜 목소리를 안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이런 내게, "네 목소리를 내!" 이건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참 쉽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 목소리, 자기의 소리, 이건 온전히 자신을, 자신의 사랑에 빠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건데. 네가 사라져도 미련이 없는 내 목소리 그곳엔 네가 없으니 말이다. 나만 있다.
그러니 자기의 목소리에 이 세상에서 조금의 흔들림 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상상력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지구 인구수-1이 아닐까. 우리 모두 다르니까. 내 흑백의 세계에서 난 비관적인 사람이라 다름을 존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진작에 포기하며 살았다. 다 자기 말만 하는 걸. 나처럼. 그러니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싫고 싸우기도 싫고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은 아주 약은 사람이 나였다.
이런 내게 누군가를 뒤돌아 버리게 할지도 모르는 내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됐다. 쉽게 뱉어선 안된다. 여기엔 그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또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담겨있다. 그냥 사랑하고 싶은 마음. 침묵이 내 사랑의 방식이었다.
내 진짜 목소리가 네게 어떻게 들릴지, 감히 판단한 교만이 죄라면 난 죄에 책임을 지고 입을 다무는 방법만 알았다. 우리 서로 다치지 않는 법. 그래서 소중한 내 사랑을 감쪽같이 지켜왔다. 하지만 이제야 들어오는 건 이것의 그림자는 다시 내 사랑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침묵의 그림자,
흥미로운 건 내겐 침묵을 묵직하게 잡아주는 것엔, 동시다발적으로 "그래서 네가 날 떠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과 함께 펼쳐져있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나의 사랑과 연결되는.
난도질하면 어린애의 두려움이지만 이 두려움이 없으면 내 깊은 곳엔 호랑이 한 마리가 날 뜀을 진작부터 알았기에 난 쉽게 말로 사람을 난도질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아이의 짓궂은 두려움이 결국은 너의 사랑을 내게 머물게 하는, 우리 사랑을 잡아당겨오는 동력으로 날 침묵에 머무르게 했다. 그러니 또다시 두려움과 사랑은 같은 말이 되어버렸고. 그냥 나. 이런 나를 알게 된다.
그러니 침묵 역시 이중적이다. 침묵은 그럴듯하면서도 참 그럴듯하지 못하다. 같은 말. 다른 표현, 그래서 넌 어느 쪽에 손을 두고 싶어? 이 모순을. 속마음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나와 아무것도 없는 너로 사랑을 하고 싶어. 난 이것뿐인데.
아끼는 말,
서로 다치지 않으면서 온전한 너와 온전한 나로 사랑하고 싶은 욕심. 이 두 가지의 마음을 다 가지려는 건 사실 욕심쟁이라 그렇다. 근데 욕심을 꿈으로 꾸면, 이 꿈이 정직하다면 꿈이 아닌 그냥 나의 이야기다.
둘 다를 포기하지 않을 방법은 뭘까. 너와 내가 하나임을 믿으면 그저 뱉으면 그만일 텐데. 결국 다시 신뢰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 것도 아닌 "너 그리고 나야" 임을 믿는 것.
미미한 너와 내가 언어를 넘어선 이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을 때만, 벌거벗은 나- 벌거벗은 너로 절묘한 사랑이 언어로 잡히는 이 신비를. 이게 참 소중해서 포기를 하지 않는 거야. 사실 이런 내게, 말이 너무 소중해서 난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난 아주 느리게 느리게 나와 너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