캅카스인은 장수 민족
"이 식당 잘 골랐네."라고 생각하면 가이드가 센스 있게 미리 소금을 빼 달라고 부탁한 곳이다.
조지아 여행 내내 ‘음식은 맛있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대체적으로 짜서 미리 부탁하지 않으면 생수를 들이켜야 했다’라고 말하겠다.
목축 국가이다 보니 유제품이 흔해 물 대신 우유나 치즈로 반죽하여 그럴 수 있겠고,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 식재료를 오래 저장하려고 안동 간고등어처럼 짭짤하게 만들어 보존성을 높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완벽한 맛있음에 소금 뿌리는’ 조지아 음식을 먹으며 이 나라 사람들의 성인병 지수를 검색해 보았다. 한국 사람의 대표적인 성인병 발병 원인이 맵고 짠 음식 때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찾아본 결과는 의외였다.
조지아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캅카스인은 장수 민족으로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길다. 캅카스인은 인접한 아제르바이잔 레릭 지역 사람들과 밀접히 교류하고 역사를 공유하니 같은 지역 주민이라 해도 무방한데, 레릭 장수박물관에는 168세까지 살았다는 무슬리모프씨의 장수 증거품이 진열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150세, 140세까지 사신 분들의 유품이 천지 삐까리다.
조지아 샤슬릭과 하차푸리를 좀 짜게 먹더라도 오래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고 말해주는 산 증인, 아니 돌아가신 증인들이다. 그들은 오래 살고 싶으면 마음을 편히 가지고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조언한다. 우린 보름간의 조지아 여행 동안 덜컹이는 낡은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먹고, 성당에서 기도하고, 서로와 함께 즐거웠으니 평균 수명이 약간은 길어지지 않았을까?
트빌리시 쿠라 강변 샤르데니거리 (Jan Shardeni St.)는 골목 양옆으로 아름다운 건물에 카페와 식당이 입점한 먹자골목이다.
야외 테이블은 앉아보고 싶어지는 예쁜 테이블보를 덮고 들어오라며 유혹한다. 직원들은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를 날릴 뿐 노골적인 호객행위를 하진 않았다. 나는 문득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역인 조지아는 양쪽 인종 유전자의 장점만을 모아 놓았나? 사람들 외모가 준수하네.’라고 생각했다.
얼굴과 체형 좌우 비율이 균형 있으면 짝을 찾는 입장에서 좋은 유전자를 가진 잘생긴 배우자 감이라고 인식한단다. 조지아 여행 중 만난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반듯한 호감형이 많았다. 연예인 같은 얼굴의 청년이 메뉴판을 갖다 준다. 우리나라 배우 원빈의 아버지가 "동네에 우리 아들 정도 인물은 흔하다."라며 일반인이 납득하기 힘든 말로 겸손을 보였었다.
조지아, 이 동네는 상당수 아버지가 겸손할 수 있는 자녀들을 가졌다. 잘 생긴 직원 총각은 서툴지만 영어가 가능했고, 우린 메뉴판의 영어로 된 설명과 사진을 참고하여 힌칼리와 하차푸리, 시원한 맥주 등을 주문했다.
힌칼리는 다진 고기 등으로 속을 채워 만든 왕만두이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인기 요리인데 사과 꼭지처럼 잡고 먹는 손잡이가 달려있다. 조지아어로 모자 '쿤디', 배꼽 '쿤치'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욕심내지 말고 버려야 한다.
먹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혹시나 하고 깨물어 봤는데 곶감 꼭지처럼 딱딱한 밀가루 반죽 덩어리였다. 힌칼리 주머니는 베어 물 때 육즙이 왈칵 터져 나오기 때문에 조심히 깨물어야 한다. 만두 속 재료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다. 산악지대에서는 어린 양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기 이외에 코티지치즈, 이메레티안 치즈, 버섯, 으깬 감자도 들어간다.
하차푸리는 우리나라 밥처럼 식사 때마다 올라오는 빵이다. 치즈와 버터로 속을 채워 굽는데, 조지아 여행상품 중에 하차푸리 만들기나 구경하기 투어도 있다. 우린 직접 만들지는 않고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는 경험을 했다. 커다란 물독 같은 화덕 안에 사람이 상체를 쑥 집어넣으면서 반죽을 붙이는 모습은 능숙하지만 고되고 힘들게 보였다.
'후르츠헬라'(churchkhela)는 귀국 선물로 추천하고 싶은 조지아 간식 겸 와인 안주다. 쿠타이시 야시장에서 처음 봤을 때 노점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생소한 모습에선 불량식품이 아닐까 거부감이 들어 굳이 먹고 싶지 않았다.
먼저 먹어본 경험이 있는 일행이 동전만 한 크기로 잘라 후르츠헬라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여주었다. 호두다. 조지아 사람들은 넉넉히 생산되는 호두와 와인을 후르츠헬라로 버무려놓았다.
조지아의 기후는 아열대에서 고산대까지 걸쳐있어 다양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와인과 포도, 보르조미 생수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밀, 보리, 콩, 과일을 비롯해 견과류, 특히 호두와 헤이즐넛 수출량은 만만치 않다. 이 중에서 호두는 오래 보관하기 힘든 작물이다.
호두파이를 좋아하는 나는 전에 건호두를 넉넉히 주문해 냉동실에 넣어두었었는데, 구입 후 6개월쯤 지났을까? 필링에 사용하려고 꺼낸 호두에서 쩐내가 났었다. 견과류에서 나는 쩐내는 산패 때문인데, 기름에 포함된 유기물이 산소, 빛과 만나 발암물질로 변한다. 건강에 좋고 맛있으니 챙겨 먹는 호두인데 보관을 잘못하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 그 후로 가격 저렴하고 품질이 좋더라도 바로 사용할 만큼만 구입하고 있다. 호두의 이런 단점을 조지아인들은 '후르츠헬라'라는 신박한 호두 보관 방법으로 극복해냈다.
조지아 여행 마지막 일정 중 므츠헤타 스베티츠호벨리 기념품 거리에서 남은 달러와 라리를 탈탈 털어 선물용 후르츠헬라를 샀다.
여행 중 트래블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해서 환전한 현금이 얼마 없었다. 수하물 무게를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거들어 귀국 선물은 최소한으로 구입했다.
트빌리시 공항에서 본 후르츠헬라는 포장은 근사했지만 가격이 비싸 사지 않았다. 귀국하니 막상 맛 보이고 싶은 사람이 많아 인터넷으로 사려 했지만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사 온 분량을 소분했는데, 내가 느낀 첫인상처럼 거부감 들까 봐, 반죽 속 재료가 보이도록 슬라이스해서 재포장했다. 와인 안주와 간식으로 어울리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캐리어 가득 담아 올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조지아 음식 이야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추운 뱃속을 따끈하게 뎁혀주던 스키장 스튜와 시그나기 아저씨의 가양주 와인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