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 간다면 실크로드 상인마냥 협상 준비를 하고 떠나자. 물건 값 흥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린 '당근의 민족' 아닌가? 트빌리시 공항에 내리면 높은 가격을 부르는 택시 기사가 등장한다. 그의 호가가 예상했던 가격이 아니라고 화낼 필요는 없다. 한국 택시비보다 저렴하다고 넙죽 다 주어서도 안된다.
단체 관광이라면 가이드를 따라 다니면 될 일이다. 하지만 개인이 결정해야 한다면 적어도 요즘 시세는 알아놓자. 한국에서 유튜브, 블로그 등 SNS를 통하면 실시간 정보를 알아갈 수 있다. 시세 정보 카드를 손에 쥐었다고 승리를 확신하는가? 조지아는 아시아와 유럽 길목에서 수 천년 교역상을 키워 온 ‘짬밥’이 있다. 바가지라고 속상하지 않을 정도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실랑이 하는일이 피곤하면 '이 정도는 더 줄 수 있다'는 상한선을 정하자.
중국 화교는 이윤 내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협상을 성사로 이끄는 과정은 예술로 생각한단다. 택시 기사와의 밀당으로 조지아 여행을 예술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택시 네 대에 나누어 타고 트빌리시 시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의 택시비를 견주어보며 경험담을 나누었다. 승객 3명에 '15라리(약 8,000원)'라고 친절하게 호객했으나, 내릴 때는'50라리(약 25,000원)'였다고 우긴 기사님이 있는가 하면, 5명과 대형 캐리어를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춰 태워다 준 분은 30라리(약 15,000원)에 데려다주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면, 택시 앱 볼트 BOLT를 설치하자. 해외여행에서는 나라마다 선호하는 여행 앱이 있는데 조지아는 최근 볼트 앱을 많이 사용한다. 4인승, 다인승 등 차량 종류를 선택할 수 있고, 미리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 인증이 필요하니 한국에서 설치하고, 결제 할 카드도 등록해야 현지에서 오류가 생기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 앱으로 무장하는 방법은 현명하지 않다. 한국처럼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메스티아에서는 '코쉬키 투어' 가격을 흥정했다. '코쉬키(Koshiki)'란 돌탑 모양을 한 조지아 전통 집인데, 적이 왔을 때 사람과 가축이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 버티며 공격도 한다. '스반타워(Svan tower)'라고도 부른다. 조지아인의 과거 전투력은 '왕이 미치면 조지아로 전쟁하러 간다.'는 페르시아 속담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지아는 빙하 모자를 쓴 4,710m 우쉬바산을 비롯해 높은 산맥들이 국경을 든든하게 지키는 형세다. 여기에 방어력 좋고 공격까지 가능한 코쉬키는 꽤 괜찮은 군사시설 겸 주거시설이다. 모양부터 특이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그 존재를 유네스코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
메스티아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코쉬키' 체험 팻말이 보인다. 사람 좋게 우릴 맞이한 집 주인은 간단한 영어로 건물의 용도와 구조를 설명하였다. 와인과 치즈를 권하며 위층에 올라가 보겠느냐고 권했는데, 우리가 반색하며 동의하자 "1인당 5라리'라고 제안하였다. 공짜가 아닌 것이다.
"5라리가 얼마야?" 조지아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미리 걷은 공동 경비를 사용하는 중이라 아직 라리의 개념이 와 닫지 않을 때였다. 서둘러 계산한 사람이 2,500원이라고 알려준다. "아~ 그 정도면 뭐, 난 할래!" 너도나도 체험해 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는 중에 나홀로 세계여행에 능숙한 세라님이 흥정해 보겠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아무래도 비싸다는 의견이다.
알고 보니 3년 전에는 1라리가 일반적인 체험비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조지아 물가가 많이 올랐다며 2라리 받는 곳이 있다.
"1인당 2라리에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세라님 말에 코쉬키 주인장은 잠시 머뭇거리며 우리 표정을 살폈다. 놀이기구를 빨리 타고 싶어 안달 난 아이 같은 우리 표정을 읽었고, 그는 이 건물을 관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냥 가요!"라는 세라님 말에 우린 "아우~그냥 해요."라며 졸랐고, 결국 1인당 5라리를 내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만족했다. 매력적인 조지아에 다시 방문한다면,아마 나의 일행들에게는 체험비 시세를 미리 교육시키고 갈 것이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왠지 '잇속을 챙기지 않는다'라는 느낌이 든다. 조지아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무료로 보여주기 때문에 ‘순수하다, 계산적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데, 사실 이들은 거래에 있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흥정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유명한 조지아 관광지를 다니면서 '이 나라, 너무 상업적이네~'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수도원마다 화장실 사용료 1라리를 칼 같이 받아내고, 즈바리 수도원 절벽 뷰에 감탄하는 외국인에게 한국 생과일 주스에 버금가는 석류주스 값을 청구하는 상인에게는 경계심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여행을 생각하면 미소 짓게 되는 몇몇 얼굴이 있다.
우선 쿠타이시 전통시장에서 후르츠헬라를 팔던 아주머니다. 영어를 못하지만 낯선 관광객의 몸짓, 손짓을 최대한 따라잡으며 미소 지으며 시식을 권했다. 이국적 외모인데 왠지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혜자 씨가 떠오르는 그녀는 우리가 함께 사진 찍고 싶다는 제의에 수줍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현지 가이드 게오르기의 고향 시그나기에 갔을 때, 함께 마주친 어르신은 마치 명절에 만난 친척 할아버지 같았다.
그는 러시아의 조지아 점령 시절, 높은 교회 첨탑에 올라가 폐기될 예정이었던 십자가를 떼어냈다. 철을 다루는 기술자였던 그는 십자가를 반으로 잘라, 친구와 한 조각씩 보관했다. 발각되었다면 무척 위험했을 행동이었다. 마침내 기약 없던 독립을 맞이했을 때, 그는 위태로운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다시 십자가를 설치해 놓았다. 그 당시 모습이 담겨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그는 우리 일정을 묻더니, 떠나기 전 꼭 들르라는 당부를 했다.
시그나기 옛 성곽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가 서둘러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고, 양손에는 낡은 유리병 가득한 가양주 와인과 따끈한 하차푸리를 들고 있었다. 약간 마른 체형에 걸음을 서두르는 그가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우리는 천천히 오시라 손을 휘저었다.
그는 우리에게 깨끗한 와인 잔을 꺼내어 건네고, 본인은 전용잔이라며 500ml는 되어 보이는 큰 유리잔을 꺼내었다. 아낌없이 콸콸 붓는 와인을 사양하며 조그만 마시겠다고 하자 "더 먹어도 괜찮다. 몸에 좋은 거다"라며 직접 만든 치즈까지 권하신다. 어른이 주는 정성을 마다할 수 없어 우린 주량보다 조금 더 마셨다. 고향 어르신 방문이었으면 미리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라 눈치껏 라리를 모았다. 함부로 돈을 건넬 수 없어 조심스럽게 인사 대신이라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가라고 했다. 계속 권하면 화낼 표정이라 난감했는데, 행동 빠른 일행 하나가 어르신 주머니에 콕 찔러 넣으며 달아났다. 이심전심일 터라 그도 웃는 얼굴로 우릴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