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게티 츠민다사메바(성삼위일체) 교회
푸른 초원에 노란 야생화가 별처럼 피어있고, 말들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싱싱한 풀로 배를 채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귀밑머리를 날리며 뛰어갈 것같은 들판이다. 눈 덮인 산에 둘러 쌓인 아름다운 언덕은 목동의 요들송이 울려 퍼지는 스위스가 연상된다. 이곳은 ‘저렴한 스위스’로 관광객에게 소개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조지아 스테판츠민다 마을이다.
‘스테판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산 정상에 게르게티 츠민다사메바 교회가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은 ‘카즈베기 산의 수도원’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 교회를 ‘구름속의 작은 방.’ ‘하늘을 떠다니는 방주’라고 노래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조지아 정교 교회이고, 조지아인들에게 정신적 고향으로 신성시 되는 장소이다. 높은 산악지대 정상에 지어졌기 때문에 전쟁 시엔 망루로 쓰였고, 타 지역 재난 때는 성녀 니노의 십자가 같은 귀중한 보물을 옮겨와 보관하는 요새로도 이용되었다.
직접 보았을 땐 우리나라 완주 위봉산성이 생각났다. 전란시 임금의 어진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산성인데 첩첩산중에 둘러쌓여있는 위봉산성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 곳 역시 산업이나 물류가 발달한 마을은 아니고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풍경에 이끌려 트래킹하러 많이 찾는다. 조지아 여행 홍보사진에 자주 등장하는데 나 역시 보았을 때 '아! 저긴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게르게티 츠민다사메바 교회로 가려면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등산과 트레킹을 겸해 가거나 7인승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다. 조지아 여행동안 우릴 따라다니던 현지 가이드가 꼭 그 차로 갈아타야한다고 설명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넓은 찻길이 정비되어 있어 우리가 타고 다니던 20인승 마슈르카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관광 수입을 위한 암묵적 룰을 만들어놓을것 같다. 7인승 이동차량의 왕복 이용료는 꽤 비쌌고, 운전사는 교회 주변을 둘러보는데 1시간내로 돌라오라고 신신당부를했다. 주차장에서 교회까지는 약 100미터 가량 걸어 올라가야한다. 시계를 보고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주어진 시간내로 다녀오려면 서두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는데 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다가 어울려 담배를 피우던 운전사들에게 주변에 피어있는 보라색, 노란색 꽃들의 이름을 물으니 웃으며 그런것은 모른다고 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준비는 그닥 없는 듯 보였다.
교회 일부는 공사중이었고 여느곳처럼 입구에 준비된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야했다.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점이 찜찜하다면 조지아 여행 갈 때는 커다란 스카프를 하나 준비하는 편이 좋다.
교회 안쪽은 전기 조명 없이 촛불로 밝히고 있었고, 성모마리아와 예수, 성니노와 존경받는 성인, 역대 지도자들의 초상이 가득했다. 당번인듯한 수도사가 관람객에게 특별히 눈길을 주지않고 한켠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경건한 분위기였지만 작은 교회의 내부 구경은 금새 끝났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멀리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회를 비롯해 마을을 빙 둘러싼 저 높은 산들 어디쯤에 프로메테우스가 매달려 벌을 받았겠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꽁꽁 묶인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는 곳이 조지아 캅카스 산맥이다.
교회와 주변 풍경에 반한 우리가 마을까지 걸어 내려간다고 했을 때,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7인승 차량 운전자들과 우리 가이드가 잔뜩 화가 난 것이다. 아마 내려갈 때의 운임을 못 받게 되어 그런듯 하다. 우리 가이드는 산길이 무척 가파르고 위험할 것이라는 조언을 하다가 못내 우리 뜻을 따랐지만, 다음번 이 지역에서 진행할 때 본인이 힘들어질것이라고 누군가에게 불평을 하였단다. 기분을 풀어주기위해 추가 팁을 주었는데 차라리 미리 적절한 금액을 요구했으면 좋았을것이다.
'무언가 잘못했나?' 라는 느낌에 불편했지만 걷기 시작하면서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만족했다. 생각보다 길은 험하지 않았고 차로 휙 지나는 것보다 발로 꼭꼭 밟으며 눈에 담는 풍경은 지루할 새 없이 변하며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중간에 잠시 멈춰 간식을 꺼내 먹으니 훌륭한 피크닉이 되었다. 하염없이 멀리 시선을 두고 사과와 빵을 느긋하게 먹고있는동안 너댓 팀이 우릴 스쳐지나갔다. 한국에서 등산할 때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간단한 인사를 건냈다. 그들 역시 반갑게 받아주었다. 마을에 도착할 때 즈음엔 한국인 부부도 만났다. 마을에 숙소를 정했는데 낮에 한번 걸었다가 아쉬워서 한번 더 걷는 중이란다. 알고보니 우리가 걸어 내려온 길은 여행객들에게 '카즈베기 트레킹'이라하여 인기있는 코스였다.
* 스테테판츠민다는 예전엔 카즈베기라고 주로 불리었으나 조지아 독립 이후 이름을 바꾸었다. 러시아어인 ‘카즈베기는 조지아어로는 ‘므킨바르트스베리, 빙하 정상, 추운 산’이라는 뜻이다.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 이 지역 영주가 저항하지 않고 마을을 넘기며 받은 작호라고 한다. 그 후 마을은 카즈베기라고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숙소나 식당 이름에 카즈베기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가 일본어 잔재를 없애려고 노력하듯, 조지아도 가능하면 러시아식 표기를 고치려 하고 있다. 우선 나라이름을 ‘그루지아’에서 조지아로 바꾸었다. ( 자국민들은 ‘카르트로스 민족이 사는 나라’라는 뜻인 ‘사카르트벨로’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카즈베기 같은 러시아식 지명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걸음이 빠른 편이기도하고 조용히 혼자 걷고싶어 간식을 나눠 먹은 후 먼저 출발했다. 산을 거의 내려와 마을에 도착하니 방목해 놓은 말들이 여럿 있고 한 남자아이가 능숙하게 한 마리를 끌고 가다 말등에 올라탄다. 방향을 바꿀 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수줍게 고객를 까딱하더니 이내 속도를 내고 달려간다.
트래킹 배낭을 맡아준다고 써 놓은 식당 겸 숙박 시설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선다.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깨끗한 학교가 있는데 수업 중인지 운동장은 조용하다. 마당에 잘 생긴 말을 강아지 처럼 풀어놓은 집을 지나 담 벼락 위로 빼꼼히 눈을 내민 꼬마 아이에게 웃어주고 계속 걸었다.
저 멀리 우리 차가 서 있는 주차장이 보이는데 슬슬 다리에 피로감이 든다. 뒤에서 오던 7인승차가 창문을 내리더니 친절하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며 태워주겠다고 한다. 고맙다며 올라서는데 비용을 말한다. 아휴.. 조지아 택시와 버스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하는구나. 현금이 없다고 말하며 바로 내려버렸다.
곧 이어 내려온 일행들과 합류하였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하여 타고 숙소를 향해 달렸다. 그날 저녁 식사는 유달리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