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바리수도원
언덕 정상에 도착한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그녀는 포도나무 가지를 꼭 움켜쥔다. 언덕 끝은 가파른 절벽으로 곤두박질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멀리 므츠헤타 시내 집들의 핑크빛 지붕과 젖 먹이듯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므츠바리강, 아라그비강의 은빛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녀는 마침내 이루었다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풀어헤친다. 차르르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칼로 뭉텅 잘라낸 후, 끈 대신 포도나무 가지를 둘둘 엮어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었다. 완성된 십자가는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우뚝 세워졌다.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인 므츠헤타 시민들은 이제 쉽사리 언덕 위 포도나무 십자가를 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성녀 니노가 만든 십자가래. 저렇게 높은 곳에 있네. 기도가 하늘에 더 잘 닿지 않을까?"
니노가 조지아에 도착해 길에 쓰러진 아이를 치료해 준 이후,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조지아에 온 그녀로서는 사람들을 도우며 신앙까지 이야기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었다. 사람들은 '성녀 니노'라고 부르며 칭송하였고, 중병을 앓던 나나 왕비도 그녀를 찾게 되었다. 왕비의 병을 치료한 니노는 왕비에 이어 미리안3세까지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조지아는 기독교를 믿는 국가가 된다.
즈바리수도원은 성녀 니노가 십자가를 세웠던 자리에 지은 석조 건물이다. 성니노가 조지아정교회의 시작점이라면 성스테파노스는 번영을 이끈 사람이다. 성스테파노스는 즈바리수도원에서 평생을 머물며 조지아어 성경을 만들고 예술과 건축 발전을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 두 존경받는 성인 덕분에 언덕 위 자그마한 즈바리수도원은 조지아 전역에서 성지순례 오는 장소가 되었다. 불리는 이름도 545년 '즈바리의 작은 교회'에서 현재는 '즈바리의 위대한 교회'라고 불리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많이 찾지만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러시아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작가는(저자 미하일 레르몬토프) 매력적인 남자 페초린과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여인 메리의 사랑 이야기를 이곳 즈바리수도원을 배경으로 그렸다.
약간 비가 추적이는 날씨라 굳이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오랜 이동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 구겨 넣었던 몸을 펴주고 싶어 움직여보았다. 주차장에서 즈바리수도원까지 돌길이 반듯하게 놓여있고, 입구 화장실엔 어김없이 할머니가 앉아 1라리 입장료를 받고 있다. 군사 요새로도 쓰였다는 수도원 담벼락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일부 허물어져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건물은 보존 상태가 꽤 좋았다.
경건함을 위해 성당 미사포처럼 무언가 쓰고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 준비된 무료 스카프를 두르고 들어가니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실내 대부분을 차지하고 서 있다. 성니노가 포도나무 십자가를 세웠던 장소를 기념하는 의미겠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조용히 향초를 바치거나 십자가에 손을 가만히 대며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건물 내부가 좁은 편이고 구경객들이 계속 들어오니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밖으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전망대에서 차례대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광이 내 눈과 마음에 훅 들어왔다. 양평 두물머리가 생각나는 세 개의 강줄기가 흐르고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을 중심으로 동화같이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인 므츠헤타 시내가 보였다. 다행히도 매력적인 저 장소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이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은 스베티(기둥) + 츠호벨리 (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의 결합어로, '생명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성의가 묻힌 자리에서 자라난 치유 나무로 성당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을에 내려가 보면 언덕 위 즈바리수도원이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