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내가 싫어하는 물건
방학 첫날, 방문을 열고 나와 처음 마주한 것은 주말의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은 거실이었다.
집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씨름해야 할 하루에 눈앞의 현실까지 겹치니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마음부터 좀 환기하고 싶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현관 팬트리에서 청소
기를 꺼냈다.
"우우웅 우웅 웨~~엥~“
활기를 얻고 싶었을 뿐인데 갈수록 혈압이 오른다. 마룻바닥을 누빌 때는 사각사각 마찰 소리
만 내던 청소기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괴성을 내뿜는다. 한겨울이 무색할 만큼 나의
온몸엔 진땀이 흐른다. 청소기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바로 거실 전체에 깔린 10년 된 4
센티미터 매트이다.
구매 당시만 해도 아기 피부처럼 뽀얀 속살을 자랑하던 매트였다. 훌륭한 쿠션감으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유능한 보호자 역할을 해 냈지만 이젠 세월의 때가 한껏 묻어 초라하기 짝이 없
다. 팽팽하던 매트 커버는 탄력을 잃어 늙은 피부처럼 밀린다.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흡입구
에 딸려 들어가니 숨이 막힌 청소기는 살려달라 아우성친다. 문어 빨판처럼 달라붙지 않으려
면 강한 마찰을 뚫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매트 사이에는 아이들이 갖고 놀던 바둑
돌이 하나씩 박혀있다. 힘들고 귀찮아 무시해버릴까 하다가도 손이 간다. 바둑돌만 빼내려 했
는데 매트 접힌 곳에 장기간 압축된 먼지 괴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일이 점점 커진다. 매
번 무거운 매트를 일일이 들었다 놨다 하며 청소하기엔 너무 버겁다. 그래서 외면했던 사각지
대들이 이따금 나를 불쑥 덮친다.
겨울 아침, 거실에 나오면 냉기가 가득한 이유도 다 매트 때문이다. 보일러를 틀어봤자 온기
가 올라오지도 않는 데다 장기간 열에 노출되면 매트 커버가 녹아 바닥에 들러붙는다니 보일
러를 틀 엄두조차 못 낸다. 그 탓에 아침마다 잠투정에 추위까지 겹친 아이들을 달래는 건 오
롯이 나의 몫이다.
이 정도 애물단지면 버려도 될 법한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랫집 때문이다. 아랫집
아저씨는 3교대 근무를 한다. 어떤 날은 새벽 6시에 퇴근해서 오전 오후 내내 자야 한다고.
사회적 거리 두기 시기, 등원은 중단되고 아이들이 오갈 데 없이 집에만 있던 어느 날, 오후
3시쯤 인터폰이 울렸다.
"여기가 태권도장이야?“
그런 항의를 받고 나면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호되게 잔소리를 쏟아냈고 돌아서
면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 어느 정도 자기 통제가 가능하지만 어쩌다
둘이 마음껏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말리고 싶지 않
다. 잔소리 한번 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매트를 쉽게 걷어 낼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하는 건 '매트'가 아니라 '선택'일지 모른다. 아랫집 눈치와 아이들 발
달 사이에서, 청소의 편리함과 층간소음 방지 사이에서, 덜 화내고, 덜 미안해하고, 누군가를
덜 미워하기 위해 내가 감당해온 타협이자 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청소기를 들고 이
밉상 매트와 씨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