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0/100)

by 비비안

어릴 때부터 난 공상을 많이 했다.

흔히 말하는 잡생각이 많아 집중해서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축구수업을 참여했는데 코치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애가 너무 산만해요.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하네요.”


내 기억으로 엄마는 이 말을 듣고 축구수업을 당장 그만두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신이 사납고 공상을 많이 하던 내가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술이다.

특히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몇 시간이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그려낸다.

나의 공상을 그림에 담아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나의 마음은 후련해진다.

그리고 이런 활동 이후에는 꼭 결과물이 있다는 거.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초중학생 때는 수채화, 크레파스, 포스터 칼라를 많이 사용했고

고등학생 이후로는 주로 펜을 사용했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조금씩 색 사용이 줄어들더니 지금의 내 그림에는 오롯이 종이 위에 검은색 펜 잉크만이 남아있다.


짐작건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내 그림에서 색을 빼앗긴 것 같다.

하지만 아쉽거나 싫진 않다.


나는 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생각하게 만드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블랙 앤 화이트가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아르 풍.

블랙코미니.


언젠가 나의 그림에 다시 색을 넣고 싶어 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색이 빠진 담백한 내 그림이 좋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나무 패널에 젯소칠을 두 번 하고 말린다.

종이에 물을 뿌려 배접한다.

그리고 검은색 잉크펜을 들어 무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지에 목공풀을 발라 충분히 말린다.

색을 입혀 한 번 더 말려낸다.


나무의 사이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두께는 어떻게 할지,

종류는 무엇으로 할지,

종이는 어떤 종이를 사용할지,

젯소를 바를지 초배지를 붙일지,

종이학의 재료는 무엇으로 할지.


구글링, 유튜브, gpt를 최대활용하며 하나 둘 정해갔다.

막상 재료가 어울리지 않아 다시 구매하기도 하고 과정이 복잡해 포기해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쉽게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이 모든 게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누군가 쉬운 길을 알려주길 바라는 우리의 나약한 마음.

그 누군가 알려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보고 공부하고 결정하고 만족했을 때 느끼는 쾌감.

이 모든 과정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드디어 준비가 다 끝났다.

이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종이학을 접어 글을 써 올릴 수 있다!

그림이 마음에 안 드는 날도 있을 것이고 잠시 며칠간 쉬고 싶은 날도 생길 것이다.

그래도 매일 그려내고 접어내고 쓸 것이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가는 우리의 삶.

그것을 100일 동안 그림, 학, 글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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