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by 비비안

계획은 이러했다.


매일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매일 10개의 학을 접고,

매일 브런치에 사진과 함께 그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글로 풀어낸다.


100일이 지나면 100개의 그림과 1000개의 학이 생기고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계획은 '계획'이었을 뿐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재료를 정하고 나무판넬에 젯소를 두 번 바른 후 풀을 발라 이합장지를 배접하여 말리고,

학을 접는데 필요한 재료를 정했다가 실패하여 다른 재료를 다시 구매하고 목공풀을 발라 말리고 색을 입혀 균일한 사이즈로 잘라내 학을 접는다.


하루에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학을 10마리 접고 세팅을 하여 사진을 찍은 후 브런치에 글을 썼다.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 계획은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얀 종이에 더 이상 그리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았고 유치한 그림이 올라가게 되었다.

화가 난 나는 0.8mm 잉크펜을 종이에 마구 문대버렸다.


잉크펜은 망가졌고 종이 또한 찢어졌다.

분에 못 이겨 판넬에서 종이를 뜯어내려 했지만 어찌나 견고하게 붙었는지 오히려 지저분하게 망가져버렸다.

이것 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더 열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종이나 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데 왜 난 벌써부터 고갈된 걸까.'


생각에 잠겨있었다.




수많은 생각을 한 후 또 다른 계획을 만들었다.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100일 안에 끝내는 프로젝트가 아닌 기한 없이 진행할 것이다.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보이고 들리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내 것으로 만들어진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웃고 울며 그 자체로 느낀다.

그 감정들은 한 겹 한 겹 정제되어 비로소 단단해지고 그것이 나의 영감이 된다.


그 영감이 쌓였을 때 하얀 종이에 그림이 보이고 비로소 펜을 활용해 무언가를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시간에 나를 가두는 것은 내 영감의 원천을 계속 빈 상태로 두겠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대학생 시절, 기간 내에 과제를 해가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그림이 나오지 않았었는지 이제 깨달았다.


느낀 것이 있는 날,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날, 전시를 다녀와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날.

어떤 날이던 내 안에 무언가가 들어오면 브런치에 글을 쓸 예정이다.


그러다 '영감'님이 찾아와서 "이제 그림 좀 그려보게나." 하면 그때 펜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학을 접어 네 번째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 백 번째 이야기를 올릴 것이다.



조크다.

영감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영감님이 찾아오는 것으로 상상하면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 ㅎㅎ



여하튼 나의 프로젝트는 더 길어질 예정이고 더 풍부해질 것이다.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리는 과정일 수도 있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나 나에겐 이게 옳은 길인 걸.



매 순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서 오늘의 글은 또 다른 나의 새로운 도약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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