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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있는 일기장 쓰기

매일 글쓰기 81일 차 (2023.07.12.)

by 장보라

‘정말 요즈음 초등학생은 일기장을 안 쓴다고? 담임선생님이 검사도 안 하고? 좋겠네.’

며칠 전 들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일기 쓰기 숙제.” 그래 숙제였다. 나쁜 점도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글을 쓰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는데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쓰기 시작한 그림일기부터 시작해서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쓴다.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만 꽤 많은 노트가 아직도 남아있다. 가끔 들추어서 읽어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때 그 시간으로 나를 보내준다.


짝꿍 이야기, 새로 오신 교생선생님, 짝사랑하던 선생님과 함께 걸어가는 긴 생머리 여자 선생님에 대한 질투, 오빠 가방에서 나온 담배꽁초를 엄마에게 일러서 오빠를 혼나게 한 일 등등 어린 내가 보낸 시간이 그 노트 안에 들어있다.



초등학생 일 때는 담임선생님이 보시고 숙제 검사를 해주는 일기를 썼다. 도장도 찍었고 답문을 적어주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운 일은 일부러 쓰지 않았었다. 그 후로도 왠지 모르게 일기장을 누가(엄마?)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기도 하고,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을 구매하여 쓰기도 했다. 한동안 그런 일기장이 유행이었던 것 보면 많은 학생이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어른이 되고서는 매일 쓰지는 않았지만 스케쥴러와 별도로 이런저런 그림과 영화표, 전시회 입장권 등등이 붙어있는 일기장이 되어갔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일기장을 고르는 일이 매년 즐거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해는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나의 1년이 되었고, 어느 해는 얇은 노트 3-5권이 나의 일 년을 함께 하곤 했다.


5년 일기장을 사서 간략하게 하루하루를 쓰기도 한다. 5년 동안 같은 날에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기장이다. 이건 매일 쓰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 치나 2, 3주 분량을 거꾸로 생각해가면서 하루에 다 쓰기도 한다. 조금 다른 스타일의 기록의 형태인데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5년을 채워보면 알겠지.



2022년 겨울에는 정말 맘에 드는 노트와 스케쥴러를 사기위해서 애썼었다. 2023년을 잘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사들였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술과 치료로 다른 시간을 보낼 때도 나의 곁에는 일기장 한 권이 있었다. 다시는 못 돌아올 그 시간의 감정을 나는 써놓고 싶어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그저 웃긴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일기장을 소중한 나의 이야기를 써 놓을 수 있었다. 아직 그 감정을 만날 자신이 없어서 다시 들추어 보지 못하고 있긴 하다.



오늘 우연히 어떤 작가님이 ‘버릴 수 있는 일기장을 쓰세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한마디가 나에게 들어왔다. 버릴 수 있는 일기장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기를 쓴다면 정말 솔직하게 쓰고 잘 쓰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일부러 정갈한 글씨로 쓰지 않아도 되고, 순서를 맞추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남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실명으로 욕하면서 써도 된다고…. 으하하 그렇군~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한번 해볼까 싶다.


박스에 넣어놓은 어릴 적 일기를 차분히 읽어보아야겠다. 그 당시의 나를 만날 준비를 하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 때 이러지 말걸. 이렇게 할껄.'하는 후회하지는 말고 그저 그 당시 나를 만나러 가보자.





두 번째 나의 직업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의 첫걸음으로 이곳에 매일 글쓰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편집이 들어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각나는 대로 쓴 첫 글입니다. 엉망이라 부끄럽지만 그대로 발행을 누르려고 합니다.


오늘이 81일 차.


왠지 기분이 좋다. 벌써 작가가 된 것 같다.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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