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카인드 카페 이야기 8
지난 주말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서울 일러스트 페어 V.16'가 열렸다.
김노을 작가님이 참여를 한다고 해서 일일 도우미를 자처했다. 왜냐고요? 굳이. 그냥 그러고 싶었다. 집순이인 그녀가 거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도우미라고 해서 머 대단한 것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이다. 사소하게는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혼자는 곤란하다.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나를 통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고 싶다.
좋은 사람들이 있다. 가지고 있는 재능도 있고, 무엇보다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할 때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하다. 등을 조금만 밀어주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아님 그저 옆에만 있어주어도 시작할 때의 힘겨움을 조금 덜 수 있다. 살짝 조금만 등에 손을 대고 밀어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일을 나는 하고 싶다.
일러스트페어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취미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 좋아서 그리는 순간에서 업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힘이 필요하다. 용기도 있어야 한다. 먼저 그 길을 간 사람이 손을 내밀어주고 조금의 도움을 준다면 작은 도움이지만 그 순간에는 큰 도움이 된다.
서울 일러스트 페어는 4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나는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쩌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그 친구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다. 그날 하루의 약속을 위해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친구의 중요한 일을 망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 강남 풍경은 왠지 나를 설레게 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노을님을 만나기로 하고 주변을 살펴본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왜지? 아직 오픈 시간이 안되었는데 줄이라도 서야 하는 건가? 전시장 입구에는 예매표를 바꾸는 사람들과 입장을 위한 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와우! 관계자 입장권을 기다리는 나는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저 멀리서 그녀가 뛰어온다. 김. 노. 을.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다른 글에 써보아야겠다.
참가자들만의 입장권을 보여주고 전시장 내부로 들어선다. 조금 들어가니, '김노을상점'이 보인다. 보라색이다. 많이 본 그녀의 캐릭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공간을 가지기 위해 노을님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뿌듯하고 흐뭇한 기분도 잠시, 빨리 오픈 준비를 해야 한다. 서둘러 겉옷과 가방을 정리하고 상품들을 정리해 본다.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일러스트 종사자가 이렇게 많았던가? 그리고 앞으로 이일을 하고 싶은 사람과 관심이 있어서 이 시간에 여기에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사람이 정말 정말 많다. 지금 시대가 디자이너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 속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샵 앞은 정말 사람이 많았다. 옆과 앞에 인기 있는 작가님의 샵이어서 일부러 찾아보고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저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걸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을님과 나는 각자의 일을 했다. 노을님이 저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오늘의 김노을 작가는 더 이상 이불밖이 무서운 집순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
김노을 작가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그는 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다. 그녀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다시 꺼낸 사람도 있다. 인증사진을 찍어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너무 좋아하는 일이다. 어떤 20대 남자분은 김노을 님의 인스타튠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정말 놀랐다. 일러스트 페어에 사람들이 몰려온다.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 만큼 사람들이 많다. 특히 딸과 함께 온 아빠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러스트 페어 전시회에는 '예쁜 것'들이 많다. 이유를 묻지 마라. 그냥 예쁘면 되는 거다. 아빠는 딸들의 손짓에 지갑을 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기쁨으로. 어떤 여학생은 '저 내년에 고3 되는데, 오늘 여기에서 스트레스 다 풀고 가려고요. 이십 만원이나 질렀어요. 호호호' 이런 말을 하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나랑 노을님은 '그래그래, 사고 싶은 건 사야 한다고. 지금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좋아서 오고, 아이들이 가고 싶어서 오고, 지인이 참여해서 오고, 다음에는 작가로 참여하고 싶어서 시장조사 겸 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연말이고 주말인 이 시간에 여기에 들 온 것 같다.
머리를 테이블 아래에 넣고 쭈그려 앉아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비비안장님....'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머리를 들어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니카 님이다. 그 후로도 비키 님, 클라라 님, 플라맘 님까지 일부러 이곳을 찾아와 주었다. 본인의 관심이 있고, 김노을 작가와 친해지고 싶은데, 나를 통해서 조금 편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이제 아는 사람이 되는 거다. 도움을 청하고 응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다. 나는 이런 게 좋다.
나는 친구를 도와주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통해서 사람들을 인사시켜 주고, 또 '예쁜 것'을 보기 위해서 이곳에 있다. 좋았다. 이번 주말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전부다. 함께 해야 한다. 혼자 놀면 재미가 없다. 성공도 함께 해야 한다. 카페를 만들어서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나만 좋은 건 아니었나 보다. 앞으로 카페 비카인드에서는 어떤 일이 또 일어나게 될지 점점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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