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가을 어느 날, 제일 친한 친구 S에게서 전화가 왔다.
- 친구야, 10월 19일에 시간 좀 내주라. 소개팅 하자
- 응 좋아. 누군데?
- 우리 과 조교님
- 응? 음.. 그~럼 몇 살이야?
- 우리보다 5살 많아
- 27살? 아저씨네. 그건 좀 싫어
- 부탁 좀 하자. 조교님이 학교에서 나랑 노는 거 보고 소개팅 요청을 했어. 나를 봐서 한 번만 응?
- ... ... ... ... ... 그래, 너의 부탁만 아니면, 그런데 5살이나 많으면 너무 아저씨 아니야?
- 미안한데 부탁해. 10월 19일 2시까지 종료에 있는 000으로 나와줘 고마워
제일 친한 친구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중2 때 만나 친구가 된 S는 평소에 그런 부탁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2년 22살. 지금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난 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해도 예쁘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나이다. 그런데, 다섯 살이나 많은 27살의 아저씨(?)와 소개팅을 하다니.. 말도 안 되고 시간낭비 일 것 같았지만, 나는 약속을 했다. 한번 나가주지 머.. 하는 마음으로
1992년 10월 19일 소개팅 날이 되었다. 보통의 소개팅에는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화장도 조금 한 여성스러운 매력을 뽐내게 하고 나갔다. (그때는 그랬다. 소개팅룩이랄까.. 머 그런 룰아닌 룰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청바지에 맨투맨 티, 머리도 질끈 묶고, 배낭 속에 두꺼운 전공 서적을 넣은 채로 종로로 향했다. 나에게는 소개팅의 긴장감이나 기대감은 1도 없었다.
허둥지둥 종로 1가에서 친구가 알려준 카페를 찾았다. 2층이라고 했는데, 나의 눈은 건물들의 2층 간판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걷고 있었다. 이 정도에서는 그 카페가 나와야 하는데, 없다. 거의 두 블럭을 걸어가면서 약속 장소를 찾았다. 1992년에는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만날 사람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다르게 물어보거나 연락할 수는 없었다.
얼굴과 몸에 땀이 흐르고 점점 더 화가 나고 있었다. 토요일 이 시간에 여기까지 나온 것도 억울한데, 약속 장소가 나타나질 않는다. 솔직히 나는 적당히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에 근처 종로서적에 갈 계획이었다.
그 당시 종로서적은 좁은 계단을 오르면서 책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아주 힙한 장소였다.
'어쩌지?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동시에 친구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무서운 과 조교 오빠이면 어떻게 하지? 내 친구의 남은 대학생활을 위해서 참아야 한다.
'이번 골목 돌아서 안 나오면 나는 간다.' 하는 마음으로 2층 카페 간판을 일일이 살피던 중에 딱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안타깝게 카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쥴은 아니었는데)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서 카페의 무거운 문을 열었다. 아마도 20분 정도 늦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20분 이상을 종로에서 길을 못 찼고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다. 카페의 문을 열자마자,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S는 계속 카페의 문을 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나에게로 걸어왔다.
- 길을 이렇게 알려주면 어떡해? 나 30분 이상이나 여기 찾느라고 힘들었어.
- 왜 이렇게 늦었어? 이런 이 땀 좀 봐
- 진짜 나 그냥 가려다가 너 얼굴 봐서 참았다
- ......
- .......
그 후로 나는 몇 마디의 말을 빠르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시선이 가는 그곳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오늘의 소개팅 상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 아저씨가 아닌 훈남 오빠네. 잘 생겼다. 키도 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짝 웃고 있었다. 그 후로의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서로 소개를 하고 친구는 떠났다. 함박스테이크를 시켜서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집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여기까지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그때 그 오빠랑 6년 연애를 하고 1998년 10월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그날의 이야기를 가끔 하곤 했다. NY는 내가 학교에서 내 친구랑 노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용기로 소개팅 부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후배에게 소개팅 부탁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내 친구도 부탁을 거절 못한 것 같다고.
그날의 소개팅 룩에 대해서도 가끔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어떻게 소개팅 나오는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나 신경을 안 쓴 모습,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일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생각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모습이 더 좋았다고 까지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워딩이 좀 웃기다. 27살 아저씨라니..
이렇게 1992년 10월 27살 아저씨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22살 아가씨는 만났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보니, 그 여럿 날 들 중에 정확하게 생각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 사진을 찍듯이 내가 마치 그 영화를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이 한 장면 전체가 기억나는 그런 날이 말이다. NY를 처음 만난 1992년 10월 19일도 그런 날 들 중 하나다. 그 경양식 집의 벽지와 벨벳 커튼과 축축한 공기마저도 기억이 난다. 오빠에게 고맙다. 나에게 이런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기억하게 해 주어서.
잘 있지? 오빠. 우리 아들 K는 얼마 전에 군대에서 전역을 했어. 이제 24살이야.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
(첫사랑의 주인공이고 내 아들 K의 아빠인 NY는 2007년 9월 교통사고로 더 이상 제 곁에 없습니다.)
이 글은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던 올봄에 '첫사랑'이라는 주제로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나갔네요. 그는 항상 제 기억에 젊고 멋진 남자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