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비라이온 Mar 02. 2021

01. 공기를 읽어야 사는 사람들

- '공기를 읽는(空気を読む)' 문화에 대한 염증

2020년 중반 경인가, 웹서핑을 하다가 일본에서는 비교적 진보 성향의 신문이라고 하는 도쿄 신문의 2020년 광고가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저장해 두었다. 좌측 '도쿄신문'이라는 타이틀 옆에 '진실, 공정, 진보적'이라고 적혀 있고, 한 가운데에는 커다랗게 '空気は、 読まない(쿠우키와,요마나이)'라고 씌여 있다. 직역하면 '공기는, 읽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언론사로서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언론이 정부나 황실에 특히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OECD 가입국 중 언론의 자유 순위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배경을 생각하면 도쿄신문의 2020년 광고 카피는 꽤나 도발적이다.

도쿄신문 광고 이미지 (출처 : 도쿄신문 홈페이지, www.tokyo-np.co.jp)



 일본어 관용구 '空気を読む(쿠우키오요무) : 공기를 읽다'는 대표적으로 일본인과 일본사회의 특성을 투영하고 있는 어구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어에서 '공기'라고 하면 우리말로는 '분위기', '눈치' 정도로 해석하면 거의 들어 맞는데, 기실 우리말의 '분위기'보다 훨씬 무겁고 큰 개념이라고 한다.(각주1) 이와 관련된 언급들을 보다보면, 일본에선 '공기'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암묵지, 혹은 관습법과도 같은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은 부지불식 간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迷惑をかける) 일이 없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다고 들었는데,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 역시 동일하게, 남 생각 안하고 내멋대로 행동해서 남에게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부터 유래한 듯 하다.


 그래서 보통은 '공기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필요한 능력으로 간주된다. 분위기 깨지 않고 눈치껏, 대화가 끊겨 어색해지거나 오디오가 비지 않게 맞장구를 잘치는 것부터, 상대(대체로 윗사람, 혹은 관계에서 보다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가 원하는 것을 한발 앞서 읽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맞춰 주는 것까지 모두 '공기를 읽는' 행위에 포함된다. 후자의 개념은 아예  '忖度(손타쿠) : 촌탁'(각주2)이라는 어휘가 있을 정도다. 


일본 TBS 드라마 "나기의 휴식(2019)" 포스터 (출처 : 일본 TBS)


 얼마 전 재미있게 보았던 2019년 일본TBS 드라마 '나기의 휴식(凪のお暇)'은 바로 그 '공기를 읽어야 하는' 문화 속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기(凪)는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억지로 웃고 남의 비위를 맞추고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하느라 지쳐 있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느라 거절도 못해서 못된 직장 동료들이 자기 일을 떠넘기곤 하는데도 싫은 내색 하나 못한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엄마가 원하는 것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놓아버리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은 깊은 물에 빠져 들어가면서 숨을 쉬지 못하는 장면과 교차되어 보여진다. 주인공 나기(凪)는 물론이고, 상당히 '공기를 잘 읽는' 인물로 보였던 나기의 전 남친도 그러한 강박 속에 비뚤어져 있는 인물이다. 

물에 빠져 숨이 막히는 듯한. (출처 : 스톡이미지)

 나기는 3명의 동료 여자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먹곤 한다. 뭉쳐 다니는 여자 직원 3명은 나기와 어울려 다니면서도 뒷담화를 하고 일을 떠넘기기 일쑤다. 그럼에도 나기는 이 동료 무리에 제대로 끼지 못할 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나기는 그녀들과 점심 후 디저트를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그녀들 틈에 위태롭게 끼어 있다. 혹시 공기를 읽을 줄 못하는 사람이 될 까봐 전전긍긍하는 나기는 다른 직원들이 이야기하다 서로 공감을 표시하며 '(아 그거 뭔지) 알아(分かる : 와까루)~!'라고 연신 반복하자 딱히 본인은 공감이 안되면서도 그 분위기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도 뭔지) 알아!'라고 리액션한다. 나기는 그 순간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자기의 의견은 숨기고(혹은 딱히 의견을 가지지 않고) 그냥 자기도 그런 척 해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 사이 본인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리고, 그저 그 맥락에 맞추려고 줄 타기를 하다보니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진정한 속내는 알지 못한다. 


"공기를 읽지 말고
상대방에게 진짜 관심을 가져봐."


 드라마 등장인물 중 각 인물들의 멘토 비슷한 역할을 하며 상담을 해주는 동네 스나쿠(스낵바, 가벼운 먹거리와 술을 파는 곳)의 마마(마담)가 있다. 그는 '대화를 잘 하는 법'과 관련된 책을 잔뜩 사와서는 (공기를 잘 읽어서) 핑퐁하듯 대화를 재미있게 이끌어가고 잘 받아치고 싶은데, 그게 힘들다는 나기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기를 읽지 말고) 남에게 정말로 관심을 가져봐"라고. 옳은 말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상대에게 관심이 가지고 이 대화에 몰입해 있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답변을 듣고 난 후 좀 더 알고싶은 점이 뭔지, 상대가 말한 것을 그냥 들은 걸로 끝내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좀더 알고 싶어하고 추가 질문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하는 질문에 또 진심으로 대답을 하고 하다보면 안그러고 싶어도 대화는 주거니받거니.. 이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상대에게 진짜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저 겉으로 감도는 공기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은 혼네(本音 : 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建て前 : 겉으로 드러나는 원칙이나 입장)를 구분한다고 한다. '공기를 읽는' 문화 역시 그러한 문화와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일게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혹시 입을지도 모르는 피해를 간과하는 것을 배려가 없고 예의 없는 행동이라 여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중일 동북아시아 권에는 전반적으로 이렇게, 관계와 영향을 고려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일본은 아마도 그러한 문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화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전의 세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심지어 공부해야 할 거리가 되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일본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런 징후를 자주 느낀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 그 중에서도 보수적인 영역인 언론계에서 당당히 '공기를 읽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 



* 참고

(각주1) 경향신문 '[특파원 칼럼] 공기를 읽는 법', 2020. 3. 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3241416001#csidxa33526e46a1b1559ba26707d1833c86 

(각주2) '忖度(손타쿠) : 촌탁'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나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스스로 알아서, 분위기와 전후 맥락을 짐작해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네이버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