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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1. 2023

아프리카 황톳길에 물들다

우간다 부모교육

2019년 여름, ‘세계시민 교육 강사’ 모임이 있었다. 모임 후 NGO 단체 대표가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11월 말부터 약 2주간 우간다에서 부모교육이 있어요,

선생님 함께 가시면 어떨까요?”

“네?”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프리카 우간다’는 내심 반가웠지만, 부모교육은 해 본 적이 없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전 부모교육 경험이 없어요 “
 ”그럼 선생님, 통역해 주세요.”
 “영어를 조금 하지만 전문 통역사 수준은 아니라서....”
 “선생님 실력이면 충분해요!”
 “하루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사실 생각하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었다. 아프리카라니, 우간다라니, 세상에! 이런 기회가 내게 온 것만으로 감격 그 자체였다.


 우간다 굴루지역 '맘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교육하는 코이카 개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나와 함께 두 명의 강사가 선정되었다. 동행했던 두 명의 강사는 베테랑 교사였다. 우리 팀은 서로 사는 지역은 달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이며, 직장맘으로서 공통점을 지닌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나는 한국어로 작성한 강의안을 영어로 번역했고 이를 우간다로 보내 현지 우간다 직원이 토착어인 아촐리어로 번역했다.


 쌀쌀한 11월 하순 늦은 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머나먼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유지인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도, 도착지 공항인 우간다 엔테베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과 문제들이 발생하여 당황했지만, 오랫동안 회사에서 화려하게(?) 사용했던 나의 영어가 힘을 발휘하여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굴루’는 약 20시간의 비행과 비포장도로인 황톳길을 6시간 가야만 하는 길고도 긴 여정 끝에 있다.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핸드폰 유심카드를 구매한 후 출발했다. 말이 6시간이지 사실 8시간은 넘게 걸렸다. 일본산 오래된 승합차(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를 운전하며 쉴 새 없이 아프리카식 영어로 열심히 가이드하는 기사 양반의 유일한 대화상대인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나 방전된 체력과 바닥난 언어의 한계로 인해 젊고 건강한 운전기사의 대화 상대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속 졸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황톳길을 덜컹거리며 승합차가 달려가는 동안 내내 졸고 있던 나를 기사 아저씨가 깨웠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나일강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라면서 내려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내가 아는 나일강은 이집트에 있는데 무슨 말 이냐고 되물어도 무조건 사진부터 찍으라 한다.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나일강의 발원지는 두 곳인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우간다 굴루 가는 길 도중에 있었다. 참 허술하고 초라해 보이는 곳이다.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동네에 있는 시냇가인 줄 알만큼 그저 그랬다. 내가 책에서, 교실에서. 영상에서 배우고 알고 있는 역사, 지리 등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글루’에 저녁 8시경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호텔 로비에 현지 한국인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 인사를 받고 그곳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자주 전기가 끊긴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아프리카 우간다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직원이 전해 준 현지 참여자들 수준과 분위기를 파악한 후 늦은 저녁 식사로 아프리카 맥주를 마시면서 늦은 밤까지 준비해 간 자료를 현지 사정에 맞춰 수정 보완했다. 다시 생각해도 최고의 팀워크다.


 한국어-영어-아촐리어로 이어지는 3자 통역의 복잡한 과정이었으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진심을 이야기했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같이 울고 웃는 풍성하고 따뜻한, 감동적인 시간을 만들었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내내 그들의 순수한 눈동자와 맑은 웃음소리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
 
 부모교육을 무사히 끝낸 후 우간다 국립공원 사파리 여행을 시작했다. 광활한 초원을 낡은 차로 달리는 동안 동물원에서만 보았던 동물들이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눈과 손이 몹시 분주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빅토리아 호수를 배로 건너 머치슨 폭포로 갔다. 배 안에서 나일강 주변의 야생동물인 아프리카코끼리, 악어, 물소등을 보았다. 쌍무지개를 머치슨 폭포 앞에서 처음 보았다. 폭포는 물보라를 만들어 피어오르고, 바위에 힘차게 부딪히며 저기 만큼 보이는 시커먼 절벽으로 낙하하면서 웅장한 소리를 내고 엄청난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세찬 물소리는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겁이 많은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인 새뮤얼 화이트 베이커 경은 “나일 강에서 본 가장 장엄한 폭포였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황홀한 하늘,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형형색색의 구름, 끊임없이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황톳길,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났다.
 

여고 시절, 난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다. 그는 “페터 카멘친트”에서 “이 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보여다오! 아니면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나에게 보여다오!” 했다. 나는 헤세처럼 틈만 나면 하늘의 구름을 보곤 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의 지평선과 맞닿은 경이롭게 아름다운 하늘과 신비스러운 형태의 구름은 평화롭고 한가하게 은빛으로 반짝거렸고 태양은 적도의 열정을 가득 담아 환영해 주었다. 그 하늘을, 그 구름을 헤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파리를 끝내고 캄팔라로 돌아오는 길은 10시간 넘게 걸렸다. 에어컨을 켜고 있어도 자동차 내부의 열 때문에 달리는 동안 간간이 창을 여닫곤 했다. 덕분에 황톳길의 붉은 먼지로 온몸이 물들어 갔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렸던 낡은 차는 중간쯤에서 다리가 풀린 듯 힘없이 주저앉았다. 사파리 동안 거칠고 험한 도로에서 무리해서였다. 차를 수리하는 동안 아낌없이 내리쬐는 적도의 강력한 태양 마사지를 아무런 방해 없이 받았다.  수리하겠다고 벌떼처럼 몰려든 현지 기술인들의 엉성한 기술력은 4시간 이상을 땡볕에 있게 했다. 너무 오래 걸려 민망했던지 자동차가 시동을 걸어주었다.  다시 한인 게스트하우스로 출발했다.      

우리에게 많이 미안해하던 기사 아저씨는 캄팔라에서 가장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했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씻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이었다. 차마 ‘no thanks’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권했다.


 마치 6, 70년대 한국의 달동네와 비슷한, 삶의 고단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거쳐 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곳이 석양을 감상하기 최고의 장소라 했다. 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우리들은 환성을 질렀다. 눈앞에 펼쳐진 붉은 석양의 파노라마는 환상적이었다. 그날 쌓인 피곤이 다 씻기는 듯했다.


 서서히 온 사방을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은 언덕 아래 위치한 밝은 주황색 지붕과 파스텔톤의 옅은 노란색 건물색 주택들, 이곳저곳 건물 사이를 메우고 있는 푸른 숲, 그리고 여기저기 자리 잡고 주인공처럼 진한 황금빛을 뽐내는 길들이 번잡한 도시의 건물들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간다의 석양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귀국길에 유쾌한 기사 아저씨는 부인과 함께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아이가 여덟이라는 부인은 불어 교사라고 했다. 여유 있는 미소와 품격 있는 태도로 잠시지만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행복한 열 명의 대가족 사진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아프리카의 진짜 젊은 힘을 보았다.
 

꽃보다 아름다운 한국인 직원의 열정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우정을 나눈 우간다 현지인들과의 교감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일로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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