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과로사할 뻔했다!
끝없이 딴지 거는 K상무, 그분은 입사 초기 나의 짝사랑이었다.
영업부만의 전유물이었던 인센티브를 지원부서 직원도 혜택 받게끔 체계를 개선했고 사보타주를 선동하는 부서장들을 설득하여 평화안을 도출하는 등 그분은 능력자였다. 회사 행사에서 재치 넘치게 사회를 보고 볼링, 골프, 심지어 화투까지 못 하는 게 없었다. 그런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대표, 그, 나는 같은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사한 신흥세력이었고 구세력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바로잡는 본사의 정책을 시행하는 삼총사였다.
중동 출신 신임 대표가 회사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총괄을 내가 맡으면서 우리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럽근무 경력이 있던 그분은 신임 대표와 동갑이었다. 중동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는지 유달리 중동 출신 대표를 무시하곤 했다. 두 사람의 대립 때문에 임원회의는 늘 살얼음을 걷는 분위기였다. 그분은 차츰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도를 넘어섰고 이에 대표는 천둥 같은 노여움으로 폭발했다. 지금도 그날 일이 선명하다. 그분은 자신이 부하직원임을 인정했고 지휘체계는 분명해졌다. 대표의 신뢰를 잃으면서 나에 대한 딴죽 걸기가 시작되었다. 나에 대한 공격 수위와 범위들은 그분 부서원들이 정보를 주어 알게 된 적도 많았다. “회의 때 조심하세요, 준비 많이 하고 계셔요.” “이 자료로 공격하려고 하니 보시고 대비하세요” 등등
미국 출신 대표가 부임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오랜 시간 공들인 S읍 공장을 Y시로 이전하게 되었다. 임원 회의에서 준공식을 창립 XX주년과 맞물려 거창하게 시행하기로 하여 직원들 가족, 본사 사장단, 이사진, 한국 대표로 있었던 사장단, 그리고 관련 주한 외교 대사들을 초청하기로 하였다. 또한 준공식에 맞춰 국내 국·영문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회사 행사를 주관했던 나는 다수 임원의 투표로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고 각 부서에서 추천한 준비위원들과 몇 달 동안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각 사업부에서는 전시할 기계들을 선택하고 구매부는 선정된 기계, 자재 부품을 공수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원팀에서는 손님 접대에 필요한 기구, 음식, 프로그램들을 준비하였다. 나는 초청 명단부터 초대장, 공항 픽업 일정, 보도 매체 선정, 기사 작성 등 준공식에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하고 정기적으로 진행 상황들을 보고했다.
준공식 바로 전날, 나보다 한 발 앞서 그분이 공장을 방문하여 사전 점검을 한 후 큰 약점이나 잡았다는 듯이 “캐노피가 너무 낡아서 손님들한테 망신당할 것 같다” 전화했다. 본 프로젝트를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자고 강하게 주장하신 분에게 지적당할까 봐 점검에 또 점검을 거듭했건만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당황하여 바로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분 말씀대로 도저히 그냥 진행하기엔 무리인 상황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밖에 없노라는 업자의 한심한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만큼 이번 프로젝트를 잘 알고 있는 동료에게 전화했다.
“당장 동대문으로 가서 캐노피 새것으로 수배하여 오늘 안으로 Y시로 공수해!”
"넵"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어떻게 하든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PERFECT’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무사히 공장 준공식을 끝낼 수 있었다.
준공식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준공식 참석차 입국한 아일랜드 사람인 전임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침에 영문 일간지에 난 관련 기사를 읽고 기사화가 너무 빨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사가 게재된 열다섯 개의 일간지의 ‘공장 준공식 기사’를 대회의실 양쪽에 쭉 펼쳐 놓고 대표를 불렀다. '됐지? 임무 완수!'
공장 이전으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S읍에서 Y시로 출퇴근이 불가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청소 용역을 맡던 분이 퇴사하기로 한 것이다. 10년을 넘게 근무했는데 퇴직금이 너무 적다고 아들이 대신 연락했다. K상무는 “10년 넘게 근무한 것은 맞지만 정직원도 아니고 직원들 세차도 해서 부수입도 있었기에 정직원과 같은 등급의 퇴직금 지급은 반대” 했다.
나는 결정권자는 아니었다. 회사가 노동법상으로 어긋나지 않도록 일 처리 하는 것이 내 역할이기에 전문가 의견서와 법정 퇴직금을 계산하여 대표에게 제출했다. 그리고 성희롱 예방 강사 교육을 받기 위해 노동 교육원으로 1박 2일 가 버렸다. 교육 기간 동안 나의 호위무사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해 주었다. 지금 사장 방에 그분이 들어갔어요, 공장장도 함께 들어갔어요, 등등.
교육을 마치고 출근하니 K상무가 호출했다. 퇴직자에게 받은 '퇴직 각서' 건네주며 자신이 얼마나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내방으로 돌아오자 이번엔 대표가 눈치를 보면서 '퇴직 각서' 받은 절차와 경위를 설명했다. '그래서 얼마나 세이브하셨나요?' “오백만 원!” '회사의 평판보다 오백만 원이 더 중요한가요? ' “때에 따라서는 오백만 원일 수도 있지”
퇴사하실 분에게 회사의 공정함과 진정성에 대해 말하며 기다려달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민망하기 그지없었고 기본조차 지킬 수 없는 회사에 헌신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그 일을 계기로 회사뿐 아니라 대표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동일시하면서 내가 곧 회사라고 완벽하게 착각하며 많은 시간이 소진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일에 대한 애정은 조직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진정성 있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 때려 치기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