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은화 Oct 13. 2023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서 0911

11. 시험과 불면

불면 퇴치 프로젝트

소소한 일상 기록입니다.



꿈을 꿨다. 꿈에서 국어시험을 봤다.

국어시험을 보는데 남들 다 맞추는 문제를 두 개, 세 개 정도 틀리고 자책하는 나를 본다.

그렇게 연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꿈의 상황은 언제나 진지하기에 자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눈을 떴다. 더 그 감정들에 몰입하려고 하는데 강제로 상황이 종료돼 버렸다. 이상하게도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왔는데도 아쉬웠다. 쩝.

왜 하필 국어 시험이었을까?


저번 주에도 시험과 관련된 꿈을 꾸었는데, 새로운 악몽 리스트에 시험보는 일이 올라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내 불면의 역사에서 수능시험날 불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교회생활을 남들보다 열심히 한 거 빼고는 성실하게 입시 준비를 해서 꿈에 바라는 연고대는 아니더라도 서울 안에서 서강대, 경희대, 외대, 중앙대도 가능하다면 가능했다. 하지만 불면이 나를 막아섰다. 발목을 잡아 패대기를 쳤다.


시험 전날, 잠이 안 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 없었다. 아니 노력할 수록 최악이 됐다.


한 시간 정도 겨우 자고 시험을 보러 갔다. 엄마가 끊여준 국을 겨우 떠먹으며 집을 나서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교과들은 더 나을 것도 없이 평소 하던대로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수학에서 난 완전히 붕괴돼 버렸다. 평소 나오던 성적도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는데, 평소보다 20점이나 낮게 나오고 말았다.


나는 시험장을 나와 집까지 울면서 걸었다. 무조건 재수였다. 잠을 주지 않으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늦게 집에 와서 말없이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지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이 됐다.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01:30 p.m.

기상시간 1차: 3: 40 a.m. (모기들의 테러)

재 취침 시간: 04: 30 a.m

기상시간 2차: 08: 40 a.m.

success/fail: S

누운 장소: 집 안방 (매트리스 위에 담요)

자기 직전 행위: 해외축구 하이라이트 보며 피자와 맥주 먹기, 팟빵 듣기

수면도움 아이템: 요가링 15분, 온열 눈 마스크 착용

몸무게: 72.2킬로 (자기 전에 피자는 먹지 말아야겠다.)

음악: 아델의 [19]


메모: 오늘이 9월 11일이네. 911



중요한 내 인생의 이벤트 속에서 불면은 늘 한 몫(?) 두 몫을 담당했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제대로 잠든 적이 거의 없다.


만약 수능시험에서 수학 성적을 전처럼 받았다면 난 아마도 문예창작이 아닌 경희대 불문과 혹은 외대 불어과 혹은 서강대 철학과 정도, 또 어느 대학 국문학과에 응모했을 것이다. 그 역시 똑 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모험을 걸어볼 만했다. 하지만 만약은 없다. 다시 도전해야했고, 1년 후 크게 성적이 오르지 못한 채 대학에 응시했다. 그런 과정에서 문예창작과라는 보물학과를 알게 됐다.


두려움 속에서 두번째 수능 시험을 봤다. 늦게 잠들었지만 다행히 밤을 꼴딱 새지는 않았다. 조금 늦게 잤던 거 같다. 공부보다는 마인드 컨트롤, 기도를 어느 때보다 많이 했던 거 같다.



비교적 최근 불면 때문에 포기한 게 하나 있다. 지금 나는 극작가로 활동 중인데 나름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배우를 한 두 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해보긴 했다. 그런데 낭독극을 해보며 배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공연하는 건 어떻게든 하겠지만 배우란 좋은 공연일 수록 오래 공연을 하게 된다. 사흘, 일주일, 이 주, 한 달을 일정한 리듬 속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날짜가 잡히면 잠을 거의 못잔다. 이렇게 못 자는 사람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더러,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한 두 번 도전은  할 수도 있지만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연극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게 돼  배우감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한다.

옆에서 배우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며 아무나 할 게 아니라는, 오랜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란 것을 새삼 알아버렸다.

사람은 모름지기 몰라야 용감할 수 있는데 감히 용감할 수 있었던 시기에 난 1등급 불면증 환자였다.


내 인생사 훑어보면, 불면으로 인해 언제나 나쁜 컨디션으로 시험을 봐왔다. 그런 거 치곤 아주 최악의 인생은 아님에 감사한다.

하지만 뭔가 찬란한 빛을 발산하지는 못하고 살아왔던 것도 같다.

불면 핑계를 대고 나를 과대평가, 과대포장해 본다.

늘 핑계는 많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서 09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