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친정으로 향했다. 미처 다 못 챙긴 물건들이 생각나서 그냥 가봤다. ‘내 집’에 내가 가는데 따로 기별할 필요가 있을까 했다. 그러나 돌발 방문했더니 공사다망한 엄마는 볼일 때문에 집에 없고 부엌에서 아빠가 닭죽을 끓이고 있었다. 닭죽 킬러인 나 없이도 자기들끼리 닭죽을 해 먹고살고 있었다니 알 수 없이 서운하다. 게다가 아빠는… ‘하의 실종’이었다.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다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빠는 내 기억보다 훨씬 홀쭉한 허벅지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섬주섬 바지를 찾아 입는다.
“어찌 연락도 없이 왔냐”라고 하는데 그제야 미안해진다. 생각해보니 아빠의 팬티 바람을 본 지도 꽤나 오래됐다. 아주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 마주한 ‘비주얼 쇼크’다. 하나뿐인 딸내미 시집보내고 허전하거나 적적해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건 내 야무진 착각이었나 보다. 아빠는 다 큰 딸내미 없는 집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동생 방문을 호기롭게 열어젖혔다. 그런데 남동생 역시 물렁물렁 저질 몸에 속옷만 걸치고 있다. 엄마는 딸을 내보내고 줄곧 이렇게 벗고 다니는 레알의 두 남자랑 살고 있었구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 하나 빠졌다고 온 집안 남자들이 팬티 바람으로 다니는 환경이 조성되다니. 진작 빠져줬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이 집에 비비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아빠가 끓인 마이 쏘울 푸드 닭죽
엄마는 언제 귀가하시려나. 닭죽을 두 그릇이나 비우는 동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곳에서 살았던 나날들이 아주 오래된 예전같이 느껴진다. 불청객처럼 집이 어색하다. 이곳은 이제 엄마 집일 뿐, 우리 집은 여기가 아닌가 봉가. 한번 집을 떠난 사람은 다시 집에 돌아와도 이제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속만 확인했다.
성년이 되어 집을 떠났다가도 혼자 살기 버거워서 다시 돌아오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연어가 어렵사리 널뛰기해서 돌아와도 개천은 이미 연어에게 얕고도 좁은 물이다. 다른 친구들도 어른이 되어, 혼자 살아보고 나서, 다시 돌아온 집은 그 집이 아니었다는 하소연을 종종 한다.
나 홀로 부부였던 나는 최근 본격 정통 주말부부로 승격됐다. 금요일이면 남편이 비교적 꼬박꼬박 집에 온다. 늘 어떤 결핍과 함께 살아왔는데 꼴랑 몇 주 만에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실감한다. 전에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는데 규칙적으로 함께 살다 보니 이제는 씻는 문제, 집에서 입고 있는 옷이나 청소 방법 등 사사건건 하나하나 다름이 보이고 우리는 새로운 갈등을 조율하며 살고 있다.
생애 첫 독립 뒤, 나는 결혼했지만 혼자 사는 아이러니한 여자로, 주변인으로 살면서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이젠 내가 부부답게 ‘따로 또 같이’ 살게 될지, 아니면 이러다가 계속 혼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처음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됐다. 일단 집을 나서고 나면 다시 돌아간들 그때 그 집은 아니다. 또 일단 누구와 같이 사는 것이 몸에 익었다가 혼자 살게 되면 그때의 혼자 살기는 사뭇 달라지리라. 아무쪼록 잔잔히 찬란하기를. 지금 현재 어떤 이유로든 혼자인 이들에게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