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는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안녕하세요, 삶의 기록을 생생하게 남기려는 비비들리 vividly 입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우선 영광이며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늘상 그렇듯 경험을 솔직하게 녹이고 싶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한 사람이 다수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그 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타인이 보내는 사랑의 송신은 어느새 먹통이 되기 일쑤입니다.
연세가 지긋해져가는 친정 부모님. 그리고 시부모님.
함께 육아하느라 지친 신랑.
오히려 챙길게 많아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씻기기, 먹이기, 옷입히기, 놀기 그리고 재우기까지의 모든 아이의 일에는
세심한 엄마의 손길이 묻어나야하지요.
부족한 사랑의 리터로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기에는 모자랍니다.
그러면 이 사랑의 리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마흔, 모든 잠든 후에>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 경험을 씨앗삼아 이야기 할 예정입니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를 다녀왔습니다. 둘째를 출산하고 8개월이 됐을 때였어요. 높은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계단이 싫었는지 임신 때처럼 자연스레, 어쩌면 내 몸에 남아있는 어떤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이내 세네명의 60대로 보이는 여성분들이 섰는데 문득 제 20~30년 후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뽀글뽀글하게 파마한 머리, 어느새 검은머리 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백발 그리고 약간은 구부정한 허리. 마흔이 되고 나서 삶에는 시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끝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요새 세상에 마흔에 아기를 낳은 건 그리 늦은 것은 아니지만, 마흔이라는 두 글자와 맞물려서 그런지 첫째 때는 없었던 산후 우울증도 찾아왔고 기존 스트레스해소법은 오히려 도피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코노가서 혼자 실컷 노래를 부르고 와도 해결되지 않았고, 혼자 2시간 운동장을 뛰다가 와도 가슴속에는 여전히 제대로 자리 잡은 돌덩이가 있는듯 했어요. 왜 이럴까? 큰 소리로 노래부르며 질러보고 2시간 바깥 산책은 첫째를 키우며 언제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었던 든든한 죽마고우 들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최 먹히지가 않습니다. 회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마저 들었습니다.
이에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탁월한 방법은 금욕주의(stoicism)의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라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는 법이었습니다.
'한 군데 문이 닫히면 이내 다른 곳이 열린다' 라는 말이 있듯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미 닫혀버린 과거를 보내주고 현재에 충실 할 수 있는 힘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 6년동안 계속해서 블로그에 글을 써오고 있지만, 둘을 키우면서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어나더레벨! 아이돌이 불렀던 ‘Next Level’ 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다음 넥스트 레벨은 무엇이 될지, 언감생심이지만 아마도 더 강력한 레벨임은 확실합니다.
여섯 살 아들과 이제 막 9개월이 되어가는 딸을 키우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용기는 힘이 있을 때 내는 것이 아니라, 없을 때 내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용기를 내봅니다. 마흔에 아이 둘을 키우면서 깨달아 가는 이야기, 특히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육아에 지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