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된 마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다: 공원벤치 샌드위치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원제:Small Things Like These>는 스몰 피크닉을 가는 한 소녀가 바라본 다양한 강아지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한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큰일 나겠죠? 실은 펄롱이라는 남자주인공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평탄하게 살고 있는 와중 우연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세탁소 미혼모들이 겪는 마땅치 못한 처우를 알게 되고, 이를 도와줄 것인지 내적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입니다.
왜 제목을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라고 했을까요?
우리는 어쩌면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면서도 쉽게 손을 뻗지 못합니다. 아마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아주 사소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쉽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일들. 바쁜 일상에 내쫓겨 내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집에서조차 머무는 시간이 거의 잠자는 시간 밖에 없었던 출산 전의 삶을 생각해보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뭐라고.
바로 동네로 스몰피크닉 가기 입니다. 소풍이라하면 왠지 꽤나 거창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서 원거리를 가야할 것 만 같았는데, 아이 둘을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작은 일이 행복 하다는 것입니다.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일.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다시 한번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일이 바로 스몰 피크닉 같아요.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집에만 있는 나의 모습을 과거의 내가 바라본다면, ‘그거 가능한거니?’하고 물을 것만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취업준비를 한다고 오전 7시에 취업스터디로 하루를 시작하여 밤 10시가 다 되어 집에 귀가하는 열정과 포부충만한 20대 초반을 보냈더랬죠. 그리고 회사원 일때는 장이 열리는 시간보다 1시간은 족히 일찍 출근을 하고 저녁 7시경 퇴근을 했던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퇴사 후, 영어강사와 과외를 하면서 수업준비를 하며 이 카페 저 카페 노트북을 들고 옮겨다니며 타이핑을 많이 했어요.- 카우치가 제대로인 까페를 발견하면 다리를 일단 뻗고 봤죠- 그러다 보면 집에 있는 시간은 정말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자는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외부세계로 떠돌았던 집시 같은 삶(?)은 육아하는 엄마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동으로 집순이 모드가 되었지만 오후 두시 전후를 기점으로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근질근질함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침에 멀쩡한 정신으로 아이를 데리고 스타벅스에 가면 좋으련만 수유하고 집청소하고 정리, 빨래 등을 하다 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래서 나만의 소확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스몰피크닉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무인양품에서 산 땅콩이 버무려진 초콜릿, 크기는 경단크기만해서 한입에 퐁당 넣기도 좋답니다. 바삭한 땅콩가루가 씹히는 맛도 좋고 한번 산 사람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따뜻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도 텀블러에 담아봅니다.
9개월이 되가는 아이의 옷을 힘겹게 입히고, 칭얼대는 아이를 또 한번 안아서 달래고 유모차가 안착시킵니다. 그리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모자로 감지 않은 머리를 가려줍니다.- 나름 멋내기용으로 캡모자를 쓰기도 합니다만! 휴~ 이제야 나간다. 마음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현관문이 열리면,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반한 듯 가슴 뻥 효과가 있는데요. 참 신기할 수가 없어요. ‘드디어 나왔다’라는 생각에 성취감마저 든답니다. 혼자 나오면 바로 튀어(?) 나올 수 있는데, 약 30분이 족히 걸리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딱히 원하는 시츄에이션이다 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미세먼지가 불청객이기는 해도 가까운 동네공원의 허름한 나무벤치에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한번 확인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가져온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너무 뜨거워서 좀 식힙니다. 혓바닥 여기서 데이면, 초라해지니까요. 그리고 땅콩버무리 초콜릿을 바스락거리며 비닐 속에서 꺼내 한입 베어 불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가 연상되는 황홀함마저 감돕니다. 이리 달콤할 수가 있다니!
<습관의 재발견>을 쓴 스티븐 기즈는 자아고갈(ego depletion)을 이야기하는데요. 당을 충전해주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길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조그마한 땅콩버무리초콜릿 녀석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대에 몇 개 안 남은 먹을거리는 대충 집어도 성공이 맞나 봐요.
커피맛과 당이 보충되고 나면, 이내 봄의 기운이 눈에 확연히 더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개나리를 만발했고 벚꽃나무에는 어느새 새순이 돋아나고 있어요. 새들은 마음껏 날아다닙니다. 이나무 저나무 옮겨 다니며 합창을 열심히도 합니다. 영하 20도를 육박하던 살을 에는 한겨울의 차디찬 기운은 금새 어디로 달아나버리고, 역동적인 생명의 향연을 두 눈으로 꼬옥 담다가 마음에 콩알보다 조금 큰 여유가 생기면서 사진도 찍어봅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오감이 있어 감사하고, 스몰피크닉을 함께 하는 아이가 있음에 또 한번 행복해지는 순간입니다. 집에서 10분거리의 공원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토록 사소한 스몰피크닉이 주는 기쁨은 상당히 큽니다.
20분 정도는 짧지만 긴 스몰피크닉을 마무리하고 나면, 개운합니다. 따뜻한 봄볕 밑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꿈틀거림은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오늘도 글을 쓰게 해주는 고마운 에너지를 고이 선물해주었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기름값도 안 들고 집에 있는 간식과 차로 누릴 수 있는 스몰피크닉,
오늘 날씨는 어떻나요? 비가 오나요? 해가 뜬다면 가까운 공원, 만약 공원이 없다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하는 스몰피크닉도 좋습니다.
첫째와 많이 했던 버스정류장 스몰피크닉도 재미있었어요. 정차하는 동안 내리고 타는 사람들 그리고 버스 안 서있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구경도 합니다. 김밥이 없어도 무거운 보냉백이 없어도 스몰피크닉은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사랑하게 해 줄 여유를 전달할거에요.
사진: Unsplash의Yosuke O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