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모두 잠든 후에] #9. 도서관 가기

중년이 된 마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다: 나를 살린 곳간

by 비비들리 vividly

4월의 어느 일요일 낮에 비바람이 불더니, 우박인가 싶어 밖을 내다봅니다. 눈이 펑펑 휘몰아칩니다. 이거 4월인지 한겨울의 1월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되네요. 아이와의 산책은 고사하고 아무래도 혼자 도서관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6살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도서관을 갔다가 월요일 휴관하는 것을 깜빡잊은 탓에 된통 땡깡으로 하루를 마무리를 지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땡깡도 아이가 커 나갈수록 하루가 지날 수록 그리워져 가지만요.


때론 혼자가 되니 도서관까진 걸어가는 길은 고독하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빌려와야겠어요. 언제부터인가 마음이라는 바구니에 간직한 특정 책을 빌린다는 것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내옆에 함께 걷는 이는 없지만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작가들과 책을 읽고 공부하고 타이핑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숨쉬는 공간이야말로 큰 약속을 하는 것과 다름 없어요.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하며 힘을 주는 것만 같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한 쪽은 파란하늘을 보여주고 다른 반대편은 먹구름이 잔뜩입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요. 인생은 회전목마라는 곡을 친언니가 직접 쳐서 카톡 배경음악으로 깔아놨는데, 문득 저 파란하늘과 먹구름도 우리의 인생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4월에 입은 보라색 패딩점퍼가 조금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따뜻해서 입고 나오기 정말 다행이다 싶어요. 혼자 다닐 때, 추우면 좀 스스로 정말 짠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바람이 매섭게 불지만 집에서 25분 정도 걷자,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유모차를 끌고 아기와 함께 온 엄마, 네 살정도 된 아이를 안은 아빠, 책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쳐메고 온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 그리고 돋보기를 껴고 열심히 책을 읽으며 필사하시는 어르신 등 다양한 사람들이 와있습니다. 특히, 중고등하교 시험기간을 앞두고 학생들이 많아 자리는 이미 만석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들 온건지, 꽤나 도서관 분위기가 활어시장처럼 활기찹니다. 육아로 지쳤던 마음에 어늣해 에너지가 스파클처럼 순간 감돕니다. 소음 없이 이렇게 활기 찰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 도서관은 이렇게 포용력이 크구나.


오늘의 목표였던 나탈리 고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손에 들고 복도의 벤치에 앉아 두 챕터를 후다닥 얼른 읽어봅니다. 도서관에서 진득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텀블러에 차도 우려마시고, 필통을 꺼내 원하는 색상의 펜과 형광펜을 쓰며 필사를 하고 하이라이트도 해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절제가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등받이 없는 벤치라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고자 오늘은 텀블러도 없습니다. 정수기만 있으면 되는 거지요.


어쨌든, 책의 무게는 일단 합격. 다만 다른 사람이 추천했다고 나에게 맞다는 보장은 없기에 휘리릭 읽어야만 합니다. ‘역시 추천한 이유가 있었군’. 혼자 되뇌이며 도서관카드를 꺼내고 무인 대출기에 올려놓습니다.


목표도 달성했겠다,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들르는 무라카미하루키 코너로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냥 기운 받는 겁니다. 아핫! 지금 블로그도 ‘For Harukish Life’가 타이틀이랍니다. 하루키가 될 수는 없겠지만, 문득 엄마사람 인생도 하루키 인생과 비슷할 수 있겠다 싶어서 붙인 타이틀이에요.


규칙적으로 하루 6시간 글을 쓰고 10km 마라톤과 수영을 하고 늦은 오후에 책을 읽는 알찬 하루를 보내듯이 아이가 기상하고 나서부터 아침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이고 저녁을 준비하고 가족의 위생을 위하여 날마다 호텔메이드가 되는 이토록 꽉 찬 삶이 있을까 싶었어요.


대학교 방학 시즌에는 언제나 거의 비어있는 무라카미하루키 책들. 그냥 누군가의 책 앞에 서서 압도당하는 느낌과 기분 좋아지는 마법같은 순간이 좋습니다.


이제 발을 조금 옮겨 나세미쏘세키로 옮겨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하는 나세미쏘세키의 글을 한번도 읽지 않은 자가 팬이 될 자격이 있을까? <마음>을 빌릴까 말까 마음은 갈등합니다. 2권은 좀 무거운데, 차를 가져올 걸 그랬나 아니, 원래 산책 운동하려고 온거잖아. 짧은 순간에 번뇌로 가득해지는 사람입니다. 저만… 그런거 아니죠? ^^;;


결국 노란표지의 <마음>도 펼칩니다. 아련해지는 문장들. 아, 빌려야겠다. 무거운게 대수냐, 혼자 도서관을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 결국 도서관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무인 대출기에 책을 올려 놓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책 대출은 클리어!


밖을 보니 바람이 잠잠해졌지만 비는 계속 내립니다.


마흔에 접어드니 코스트코에 높게 쌓아 올려진 물건보다 도서관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때론 널부러져 정리가 덜된 책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읽은 흔적이 있는 때 탄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비싼 책갈피보다는 커피로 조금은 얼룩진 티슈를 책갈피로 꽂아 놓은 그 책을 볼 때, 알 수 없는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당신도 많이 바쁘군요'. 우리가 뭐, 예쁜 책갈피 어디에 뒀는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읽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는게 중요하니까요. 뭐, 책꾸(책꾸미기도구들)가 유행한다고 하지만, 그게 뭔가요? 모서리 한 켠이 찢어진 한번 메모한 포스트 잇으로 책갈피 하게 될 줄 저도 몰랐거든요. ^^ 책모서리를 접어 표시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기에 잡히는대로 책갈피가 되는 거죠. 요새는 프린터 된 대출증이 책갈피가 되어가고요.


이런 의미에서 도서관 입구의 특별전시는 안타까웠어요.

바로 몹쓸 짓을 당한 책의 전시였는데요.


- 책표지를 컵받침으로 써서 차 얼룩이 남아 있는 경우

- 침수피해를 입은 경우

- 곰팡이가 피어난 경우

- 찢어진 경우


다 제 각기의 사연이 있겠지요. 지금 글을 쓰고는 있지만 일주일 전 빌린 책에 머그잔에서 꺼낸 흠뻑 젖은 티백이 어느새 스며 들고 있는 것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책의 수난기 였어요. 아, 죄송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우리의 일상에 발생하지만 그래도 빌린 책만큼은 지켜주자구요. 아니 깨끗하게 사수!! 간혹, 밑줄 그어진 부분은 해당 책을 빠르게 스키밍(훑어읽기)을 하는데 도움도 됩니다만, 그래도 빌린 책이니까요.


비바람치는 어느 4월의 일요일날의 도서관 마실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도서관 밤마실



아이들을 재우고 30분 남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해봅니다. 밤 9시 반.


반납기한은 넘기고 싶지 않아 방문해 봅니다. 아이슈타인 문구를 보고 칼뉴포트의 <Slow Productivity>를 빌립니다.


조용한 도서관, 엄마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입니다. 역시나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 그리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 후 방문한 직장인까지. 클로징을 알리는 방송은 밤10시가 되기 10분전에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부랴부랴 책을 빌리고 차가워진 공기와 함게 언덕길을 내려옵니다.


뒤에는 고등학생 소녀들의 한국사 시험 이야기. 민며느리제. 며느리라는 세글자에 가슴이 한번 뜨끔합니다. 어떤 페르소나는 잠깐 고이 접어두고 싶기도 하니까요.


30분 만에 끝나버린 도서관 방문이지만, 잠깐이라도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서관은 마흔의 나를 살린 따뜻한 곳간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곳간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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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Shunya Koide

사진(타이틀): UnsplashAlex Lv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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