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in] 보름달이 비추는 새벽 네시

일반적인 엄마사람의 일과 가족 이야기

by 비비들리 vividly

잠을 오래 자면 머릿 속이 정말 리셋 될까?


토요일밤 9시 이후부터 열이 오른 아이가 아직도 39도를 넘나드는 고열을 보인다.

미지근한 가제수건으로 목 뒤와 이마를 적셔본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독감 A형이라고 한다.

열은 잘 떨어지지 않고 4일 정도 지나면 열이 가라앉는 다는데,

독감과 함께온 사춘기 '안해'병이 더욱 더 심해 아이가 약을 당최 먹질 않는다.

힘도 어느 정도 세졌기에 당해내는라 곤혹이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듣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울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엄청 버럭하기다.

이건 미친 사람처럼의 연기가 때론 필요하다.

시궁창물을 뒤집어쓴 머리 헝클어진 평범한 아줌마가 미치고 발광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과 같다.

어제는 후자를 선택했는데, 에너지가 꽤나 소모가 많이 되었다.

결국 뇌는 리셋하고 싶었는지 오전 9시가 되서야 눈이 떠졌다.

그렇다고 깊은 잠을 잔 것은 아니니까.


좋게 좋게 타일러서 약을 먹는다면 좋겠지만,

무조건 안먹는다는,

그리고 핑계도 늘었다.


"사과를 먹으면 열이 내려가요."

"약은 먹지 않아. 열이 내려갈꺼에요."


문득 난 어떤 반항을 부모에게 했는가? 라는 자의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기억나는 건, 친정엄마의 새끼손가락.

새끼손가락으로 가루약을 저어 여섯살의 나에게 미음을 끓여주시고 난 뒤, 먹이셨다.

"이렇게 먹으면 금방 나아. 옳지. 꿀떡"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금새 따랐다.


"아무래도 독립투사 아니었을까? 아니, 온갖 고문을 해도 입한번 안여는 것하고 같잖아."

"그러게. 저 놈 독립투사였어. 확실히."


부부의 대화는 아이의 이야기로 통할 뿐이다.

독립투사라는 네 음절로 금새 동의가 이루어진다.


이번 A형 독감에 걸린 아이가 안타까운 이유는 무엇보다 토요일 나와의 데이트, 그러니까 아이에겐 엄마와의 데이트지.

엄마랑 데이트를 5시간 하고 나서 귀가하고 열이 났기 때문이다. 금요일 깨림칙한 일의 잔상을 뒤로 하고, 엄마라는 페르소나로 돌아와 주말을 보내야 하는데 토요일 정오까지 페르소나가 잘 깨어나지 않았다.


여유있게 커피 한잔 내려서 토스트를 먹고 예쁘게 썰은 사과 따위의 과일을 원목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보고 하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와버린 것이다. 아니면 느긋하게 열시경에 일어나서 마치 오늘의 시간은 내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사우나를 가서 몸을 푸는 상상도 해본다.


정신없이 달걀을 삶고 누룽지를 끓이고 얼른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그런 토요일 아침은 그날 따라 마치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연스러웠던 일은 때로는 외부의 공기로 낯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다행히도 한 시정도를 기점으로 해서 나의 철부지 마음은 테이프를 붙인 풍선에 바늘을 가져다대면 천천히 바람이 빠지듯 누그러지고 현실을 깨닫고 아이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엄마, 키즈 까페 가요."

아침에 적어도 스무번은 들었을 거다.


엄마사람도 때로는 아이와 같다. 마흔을 먹었는데도 누가 하자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본능이 나온다. 어쩌면 아이의 간곡한 바램이 늦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댓가가 A형 독감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제 청개구리 좀 그만하라고 내리는 벌 같은 건가?


가방에 아이와 나의 물통을 각각 넣고, 옷을 갈아 입히고 출발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엄마라는 자아에서 또 한번의 두 얼굴이 나타난다. 오롯이 첫째와 있을 때는 집중 할 수 있기에 한결 여유러워지고 친절한 엄마가 된다는 점. 그리고 엄마와의 데이트 이후, 아이가 상당히 차분해지고 온순해진다는 점. 사랑이란 태양이 열렬히 내리쬐 뜨거워진 해변의 모래가 타들어갈 정도의 집중이 필요한 일일까?


키즈카페에 도착해서 아이와 블록을 매만져본다. 화장실이 급해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도 이제는 관리직원과 친해져서 잘 놀고 있다.

"이 녀석, 많이 컸다. 정말로."

마음 속으로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스스로에게 내뱉어 본다.

엄마보다 블록을 뚝딱 잘 만든다.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요."

아이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뭐? 혼자 갈 수 있어? 혼자 가봤어?"


아이는 대답없이 그냥 화장실로 직행한다. 키즈카페 내부에 있는 화장실이여서 안심은 되지만 당연히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일을 보는 아이. 또 한번 마음이 이상해진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키즈카페를 나와 서점을 들르고 아이가 모래 놀이를 하는 사이 잠깐 주변의 진열된 책을 둘러보다가 한 권을 들어 몇 줄 읽어본다.


서점을 나와 둘이 가족화장실을 들어간다. 아이가 먼저 일을 보고 그 다음은 내 차례. 아이는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


"엄마 문을 닫아줄게요."

그러고는 가족화장실 내부의 또 다른 문 하나를 닫는다.

"응, 잠깐 기다려."

행여 아이가 나갈까봐 얼른 일을 보고는 문을 열고 나간다.


언제 이렇게 많이 큰 걸까?


팝콘이 먹고 싶다고 하여 영수증을 보여주면 5000원 하는 팝콘을 사러 영화관으로 다시 올라간다. 팝콘 의식(ritual)이 된 것 같다. 꽤나 익숙했던 장소가 육아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후로는 언감생심이 되어 버렸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적지 않아 보였고 달콤한 팝콘 냄새로 변하지 않는 영화관의 성질을 대신했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애니매이션은 이제 보러 올 수 있겠다 싶다. 종이봉투에 꽉찬 팝콘을 아이에게 안겨줄 때가 참 좋다. 좋아하는 순간은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창조된다.


"잠깐 앉았다 갈까?"

원형테이블과 의자가 비어있길래 전광판의 영화예고편을 보고 싶어 아이에게 말했다.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가>가 재상영하나보다.

아마 엄마는 죽었고, 남편과 아들을 잠깐 만나러 왔나보다.


아이는 생각보다 팝콘을 많이 먹지 않았다. 엄마에게 팝콘을 맡긴다.


귀가해서 아이는 남편에게는

"너무 많이 늦었죠? 미안해요."

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 즘 지났을까 아이의 열은 올라왔다.


그날 밤 꿈을 하나 꿨다.

나는 꿈 속에서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일까?

잠깐이지만 영화관의 여운이 컸나 보다.


오늘 자리에 앉기 전 차창밖으로 너무 밝은 보름달의 빛이 그리 두껍지 않은 커튼을 뚫고 탁자를 비추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오늘 새벽 네시의 너의 희망이야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griffin-wooldridge-aFMsnhkZoJg-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Griffin Woold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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