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완벽함에 대해

당신도 나도 그저 사람일뿐인것을

by 시원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한번 깬 잠은 마음까지 깨워놓고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어긋났을까. 화해라는 건 결국 타이밍인데 우리는 그 순간을 번번이 놓쳤다.


며칠 뒤 저녁,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행 전에 주문해 둔 택배 사진이었다.

“택배 도착했어. 고마워.”

아침부터 받아두고는 연락할까 말까 망설였을 엄마가 눈에 그려졌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마음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창문을 열자, 밤공기가 느릿하게 스며들었다. 낮의 끈적임은 사라지고, 바람은 오래된 마음처럼 조용히 방 안을 돌았다.

엄마와 나 사이엔 작은 문이 있다. 아주 사소한 틈에도 덜컥 열려 버리는 문. 우리는 자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가끔 밉다. 엄마도 날 사랑하지만, 아마 미운 순간이 있었을 거다. 서로 많이 닮았으니까. 닮음은 편안하면서도 불편하다. 잘 통하게도 하지만, 괜히 더 부딪히게도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닮은 듯 다른 간격을 오가며 살아간다.


넘어지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왜 사람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먼저 부를까. 아마도 엄마는 자식의 고통을 세상 그 무엇보다 빨리 감지하고, 가장 먼저 달려올 사람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내게 엄마는 언제나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엄마를 ‘완벽’이라는 단어로 묶어 두었다.

하지만 익숙한 도시를,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낯설어진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달라졌다.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엄마,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엄마. 예전 같으면 나를 챙기느라 정신없었을 엄마가, 이제는 내 손을 잡고 따라와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엄마가 낯설었고,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괜히 속이 좁아졌다.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알았다. 엄마도 사람이라는 걸. 더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든다는 건 늘 의지하던 사람의 안쪽에 생긴 균열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방콕 여행 몇 해 뒤, 유럽으로 함께 떠났을 때 엄마는 말했다. 어릴 땐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데리고 다니는 입장이 되었다고. 돌이켜보니, 내가 어린 시절에 ‘싫어’, ‘안 해’, ‘맛없어’를 입에 달고 살 때도 엄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짜증 내고 울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그때마다 번쩍 안아 올리고 달래고 끌고 가주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엄마의 손이 내게 기대온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서로의 역할을 바꿔 가며 사는 일이기도 하다.


The older I 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나이가 들수록 더 알게 돼

부모님은 영웅이 아니었어, 그냥 나랑 같은 사람이었던 걸
Sasha Sloan, <Older>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부모님은 영웅이 아니란걸. 완벽이란 말은 사랑 앞에서 너무 무거운 옷이었다는 걸. 이제는 바란다. 엄마가 더는 무거운 침묵 안에 머물지 않기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피곤하면 먼저 등을 돌릴 수 있기를. 하루에 한 번쯤은 마음 놓고 웃기를. 언제나 마지막에 자신을 두던 당신이, 이젠 가장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속 걱정의 무게가 그렇게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그리고 내가 그 무게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기를.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많은 걸 기대한다. 나는 엄마가 늘 나를 지켜줄 단단한 보호막이길 바랐고, 엄마는 내가 모든 걸 척척 해내는 딸이길 바랐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가장 오래된 기대의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자주 실망하고, 때로는 다시 마음을 고쳐잡는다.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 어쩌면 그게 진짜 가까워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기대가 어떻게 서서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왔는지를 말이다.


밤이 깊다. 휴대폰을 들어 짧은 문자를 보낸다.
“엄마, 미안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그래, 나도.”

서로에게 완벽함을 기대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는 이제 덜 오해하고, 더 자주 마음을 건넨다. 익숙했던 사이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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