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던 엄마

워킹맘으로 살아가기

by 무지개빛 아침별

근무 중에 타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비가 왔고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생일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다친 아이가 왔는데 내 아이인 거 같다며 성형외과로 오라는 전화였다. 엄마가 연락이 안 되니 원에서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을 새도 없이 바빴다. 급히 내려가 보니 분홍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새빨개진 얼굴에 코 주변으로 큰 혹이 불거져있었다. 담임선생님한테 안겨 울고 있었다. 생일 행사를 하고 아이들과 케이크를 먹으려고 둘러앉아 촛불을 끄라고 했는데 맘에 내키지 않았던지 저항하다가 책상에 얼굴을 크게 부딪쳤다고 한다. 다행히 골절이나 큰 문제는 없었다. 아이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다시 목청 터지게 우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침부터 출근을 서두르느냐 유모차 안전띠도 안 걸고 내리막 길을 막 밀고 내려갔던 걸 아이를 원에 내려놓으면서 알게 되었던 정신없던 날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욕실에서 쓱 미끄러졌는데 머리는 안 다쳤다거나 의자에서 떨어졌는데 엉덩이로 떨어지는 등 ‘하느님이 보우하사’가 새겨지는 그런 순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날도 그러했다. 눈 가까이 얼굴에 큰 혹이 생기고 멍이 든 두 돌 사진을 볼 때면 선생님께 안겨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출산하고 산전 후 휴가, 육아휴직 기간을 꽉 채우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예쁜 짓을 할 즘에 복직을 했다. 첫째는 두 돌이 채 못 돼서부터 직장 옆 큰 어린이집에 맡길 때까지 반년을 넘게 외갓집에서 자랐다.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맡겼던 둘째보다도 더 애가 탔다.
그래서인지 둘째의 육아휴직은 둘째를 돌보는 목적보다는 그동안 일한다며 함께 잠들지 못하고 떨어져서 키웠던 첫째에 대한 보상적 의미가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을 헛 집으며 부산하고 마음만 앞섰던 것 같다.

남매를 다섯 살 터울로 키우며 쩔쩔매는 내게 어르신들이 연년생 안 키우기를 정말 다행이라 하시기도 했는데

본래 그럴싸하게 두 가지 몫을 해내는 척하며 둘러대는 것도 서툴렀다.


워킹맘이니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그래~ 괜찮지 않을 땐 세게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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