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무지개 물고기'라는 동화를 참 많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홀로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아름다운 물고기 무지개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다른 물고기들이 무지개에게 비늘을 달라고 부탁하자, 무지개는 기분이 나빠 단호히 거절했다. 그 결과 무지개는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 무엇이든 혼자 해결하려 했고, 내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기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내 기준은 확고했고, 이는 곧 주변 어른들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에게 이 동화를 반복해서 읽어주었다. ‘주지 마, 네 거야. 왜 줘야 해? 주면 아플 거야!’ 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했다.
"왜 줘야 돼? 반짝이는 비늘은 무지개 물고기 거야. 너무 예뻐, 비늘 떼면 아파."
나는 어른들을 귀찮게 하며 계속 물어댔다. 그럼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야 친구라면 나눠야 하니까, 사이좋게 지내야 하니까. "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끝도 없이 던지며 어른들을 괴롭(?)혔다. 나에게는 내 것과 상대의 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그때의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나를 잃고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조건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답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 건 네 거야. 주기 싫으면 억지로 주지 마.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이해하고 지켜줄 친구를 만나. 주지 마, 무지개야."
이 동화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무지개 물고기는 아름다운 비늘을 나눠줘야만 했던 불쌍한 존재로 남아 있다.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떼어줘야 했던 무지개 물고기의 이야기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상이 무조건적인 나눔을 강요할 때,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나눔이란 꼭 물질만이 아닌 감정이나 말 행동들을 포함한 말이다.) 나의 무지개 비늘은 과연 누구를 위해 떼어줘야 할까? 어쩌면 진정한 나눔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