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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29. 2024

싸구려 입맛은 대물림된다.

오늘의 저녁은 물에 만 밥


앞족 대자 막국수 세트 5만 2천 원. 부유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는 형편이라 한 끼 오만 원은 우습다. 따끈한 족발 야들한 껍데기가 입에서 달금 녹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너 점 먹고 금세 질려 손을 놓는다.


'이게 무슨 오만 원이야? 만 원짜리 편의점 족발이 훨씬 맛있겠다!' 중얼댄다.


문득, 어릴 적 먹던 족발의 맛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엄마는 구멍가게 족발을 사다 주곤 했다. 따끈한 족발은 연중행사였지만, 시판 족발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덕에 실컷 맛볼 수 있었다.


엄마는 얼마 있지도 않은 살을 바르겠다고, 미끄러지는 손을 쪽쪽 빨며 궁상을 떨었다.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던 내 입에 그 조각을 틈틈이 욱여넣었다. 그녀는 야물야물 씹는 내 입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족발이 영어로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다. 내가 우습게 혀를 꼬아 "줙봘" 했더니, 그녀는 연신 박수를 치고, 뒤로 넘어가며 대소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더 발라줄 것이 있나 뒤적거렸었다.


눈앞에 비싼 족발을 두고, 고무처럼 질긴 족발이 더 맛있다는 이 싸구려 입맛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그녀가 범인이었다. 밉고, 원망스럽다. 그래서 다짐한다. 내 새끼 앞에서는 좋은 것만 먹고, 먹여주리라. 이 초라한 입맛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고무처럼 질긴 추억이 아닌, 따듯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남겨주리라.


고개를 푹 숙이고 고무 같은 덩어리를 뜯어 입에 넣어주면서도 미안함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별로 우습지도 않은 소리에 박장대소하며 눈물을 감추던 그녀의 모습. 그 모습처럼 한심한 입맛은 내 아이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으리라.




위의 글은 예전에 족발을 먹고 쓴 일기입니다. 


오늘 저는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배가 몹시 고파졌고, 밥에 물을 말아 김치를 올려 먹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집에 김치가 없어서 남편에게 김치를 사 오라고 부탁하며, 제가 어떻게 먹고 싶은지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식비 때문에 그래? 아니, 그렇게 먹게 할 수 없어. 그렇게까지 불쌍하게 먹을 필요는 없어."라고 말하며 더 좋은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어제 식비에 대해 잔소리를 좀 했더니, 남편은 제가 식비를 아끼려고 그렇게 먹으려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지 그 맛을 느끼고 싶을 뿐이라고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그 말을 믿지 않는지, 저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잘 차려진 자신의 저녁도 잘 먹지 못했습니다. 제 초라한 입맛이 잘 살고 있던 남편까지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며 당당하게 말했지만, 저의 지난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남편 앞에서 괜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제 입맛을 당당하게 여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끄럽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에 배어버린 입맛처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이 아이에게 슬픔을 전해주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내 아이에게 슬픔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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