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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30. 2024

외모지상주의의 싸구려가방에 속은 물질만능주의, 빈과부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배하는 게임


나는 풍족하게 자란 편이 아니라 비싼 물건을 사고 사치 부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나 자신을 재산처럼 아끼며 항상 곱게 하고 다녔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말이 없고 차가운 인상 때문인지 오히려 부유할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대 초반에 나는 미용학원에 다녔다. 내가 다니는 반에는 15명쯤 있었고, 나이는 20세부터 60세까지 다양했으며, 모두 나이와 상관없이 잘 어울렸다. 나는 그들과 안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함께 어울리거나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미용 선생님이 헤어 스팀을 할 테니 트리트먼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집 근처 미용 재료상에 가서 싸고 좋은 것을 달라고 했고, 가게 주인은 커다란 파란 통을 내밀며 만 원이라고 했다. 집에서 펌프를 눌러 짜보니 통만큼 파란 트리트먼트가 나왔고, 사용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다음 날 학원에 가지고 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 몇 명이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들은 내 것을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모두 머리를 감고 나온 후 선생님을 따라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랩을 씌워 스팀을 했다. 잠시 기다린 후 머리를 감았다. 나에게 준비물을 빌려 사용한 사람들은 그 제품을 칭송하며 머릿결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내 것을 쓰고 싶어 했고, 빌려주었다. 사용 후 그들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제품이 좋다고 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도 같은 수업이 있었다. 그들은 또 내 것을 쓰고 싶어 했고, 나는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커다란 통에 가득하던 것이 반도 남지 않았지만, 모두가 좋다고 하니 나도 좋았다.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몇 사람이 몰려와 그 제품을 어디서 샀고, 얼마인지 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것이 만 원이며, 집 근처에서 샀다고 말했다. 양도 많고, 모두가 칭송할 만큼 좋은 제품을 만 원에 샀다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속으로 그들이 원하면 대신 사다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은 내가 굉장히 좋은 것을 사용했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아… 그렇구나…" 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서 샀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들이 "에이씨, 속았네" 하며 조용히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자 나에게 빌려달라고 했던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통을 열어 아직 양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다른 일화로는, 내가 명동에서 검은 백팩을 하나 구입했을 때였다. 맨질맨질한 재질이 고급스럽고 예뻤다. 가격은 3만 원밖에 하지 않았다. 크기, 재질, 디자인 모두 완벽했다. 나는 그 가방을 메고 홀로 기차에 탑승했다. 내 옆좌석에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귀찮았지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 후 가방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이 예쁘다며 브랜드를 물었다. 나는 그냥 명동에서 샀다고 했다. 그녀는 "아니요, 브랜드가 어디냐고요."라며 다시 물었다. 나는 브랜드는 없고, 명동 길거리에서 3만 원 주고 샀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 여자가 사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하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잊어버렸는데'라고 바보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장난치듯 웃으며 "아… 브랜드도 없는 거네, 눈베렸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 장난치는 줄 알고 함께 웃었다. 그러나 한참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게 장난이 아니라 무례하고 도전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서러웠다. 그때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것이.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 사회의 깊은 빈부격차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외모지상주의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내가 사용한 트리트먼트나 가방의 실질적인 가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가격표와 브랜드,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지위를 더 중시했다. 내가 비싼 제품이나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들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의 단적인 예이다.


빈부격차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람들 간의 관계와 인식을 왜곡시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내가 사용하는 제품의 가격이나 브랜드를 통해 나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대우를 달리 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또한, 이러한 경험들은 외모지상주의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외모와 겉모습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나의 외모를 보고 나를 부유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고, 그 외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감을 드러낸다. 이는 외모지상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종종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실제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하지만, 물질적인 가치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누릴 수 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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