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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Jul 21. 2024

세탁기 안에 갇혀 생사를 오가다

20화. 학교 가기 힘들었어요.


교회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는 것도 정말 싫었다. 매일 등교 준비부터 순탄치 않아 자주 지각하곤 했다. 특히 지각의 주요 원인은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다.


난 또래 아이들과 달리 외모에 관심이 없었다. 주로 슬리퍼를 신고 다녔고, 옷은 한 가지만 고집했다. 관심이 없는 정도를 넘어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거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인지와 감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난 다른 아이들과 다른 종의 생물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도 나름대로 신경 쓰는 것이 있었다. 바로 머리를 묶는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방향이 조금 달랐다. 그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머리를 손질했다면, 나는 촉각적인 황금비율을 맞추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


머리카락을 모아 쥐면서 두피가 당겨지는 힘을 세심하게 느꼈다. 모든 머리카락이 같은 힘으로 팽팽해져야 했다. 한 올 한 올이 두피를 당기는 느낌이 전부 같아야만 했다. 몇 시간에 걸쳐 동일한 인장감을 완성한 후, 그대로 유지한 채 머리끈을 뱅뱅 돌려 묶었다. 도중에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장력이 무너지면 다시 풀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심각할 경우에는 아예 머리를 감는 시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 특징은 유년기를 넘어 20대 중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보는 사람들도 지친다고 했지만, 가장 힘들고 지친 건 나 자신이었다.


이 때문에도 어머니에게 자주 혼나곤 했지만, 집에 그녀가 없던 이 시기에는 아침마다 시간에 쫓길 일 없이 여유로웠다. 아버지는 일찍 일터로 나갔고, 나 혼자 등교 준비를 했다. 머리를 만지다 보면 어느새 학교가 끝날 즈음이 되어 서둘러 출석만 하고 오기도 했다.


내 온몸의 예민한 감각들은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날카롭게 깨어났다. 공기 중에 가득한 아이들의 냄새가 머릿속에 둔탁한 통증을 일으켰다. 멀미를 하는 듯 속이 울렁거리고 쓰리기도 했다. 청각적인 자극은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교사와 아이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각적으로 예를 들자면, 눈앞에 커다란 실타래 여러 개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안으로 뇌가 빨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중심에 항상 날이 선 상태로 웅크려있었다. 교실은 작은 지옥의 현현이자 악몽의 구렁텅이였다. 청각적 스트레스가 과중될 때면 물건을 던지거나 소란을 피우곤 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방방 뛰고, 내 머리를 때리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때로는 모두가 나를 공격하려고 일부러 시끄럽게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학교에 가는 것은 여러모로 끔찍했다. 차라리 유배를 떠나고 말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종종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이나 대강당 커튼 뒤에 숨어 있곤 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도 체벌을 많이 받았다. 체벌 후에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가곤 했기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썼다. 그러나 어머니가 부재한 이 시기에는 두려울 게 없었다. 마음껏 숨어 지내고, 수업 중에도 거리낌 없이 뛰쳐나갔다.


어느 날, 담임교사는 방과 후에 집에 가지 말고 남으라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모두가 교실을 떠나고 교사마저 자리를 비운 뒤, 홀로 남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교사가 들어오는 그 뒤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뺨부터 갈겼다.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발길질을 퍼부었다. 교사가 말려도 멈추지 않고 한참을 때리더니 마침내 양손을 털고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어후 씨.. 선생님, 죄송합니다. 김성희 너, 죄송하다고 말 안 해?』 어머니는 성난 황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놀란 토끼처럼 움찔움찔거렸다.


여러 번 사죄를 하고 학교를 벗어났다. 어머니는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걸어가다가 틈틈이 뒤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씩씩댔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내 옷을 벗긴 후 사정없이 때리고, 벌세웠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물을 세게 틀었다. 곧 나를 부르기에 가보니, 세탁기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내게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두려움에 휩싸여 다리가 후들거렸다. 손사래 치며 뒤로 물러섰지만 더는 갈 곳이 없었다. 『맞아 죽을래? 좋게 들어갈래?』 오싹한 목소리에 굴복하여 차디찬 물에 몸을 담갔다. 이어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했다. 그랬다간 머리가 물에 잠길 것이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망설이다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물은 내 몸무게만큼 넘쳐흘렀으나 여전히 인중까지 차올랐다.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물속으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세탁기 뚜껑을 닫아 힘껏 눌러 붙잡았다. 탈출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옷을 씻기던 세탁기는 이제 나를 씻기고 있었고, 그 재료는 내 눈물이었다. 발버둥 칠 때마다 절규와 애원으로 물이 넘실거리고, 내 몸에는 탈수가 왔다. 그녀는 틈틈이 뚜껑을 열어주었다. 죽지는 말라는 의도였다. 길게 가두고 잠시만 열어주었는데, 돌고래조차도 그런 식으로 숨을 쉬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학교에서 그딴 전화 오면 정말 죽을 줄 알어』 고문 끝에 그녀가 말했다. 원망스러웠다. 언제나 세상은 나를 배신하고 나만을 박해했다. 어머니는 서랍장을 뒤져 만 원짜리 몇 장을 챙기며,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뒤 다시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와 오늘은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나는 항상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편이었다. 『그냥 있었어.』 평소와 같이 대답했다. 그는 서랍장을 뒤적거리다 나를 불렀다. 『김성희!』 『아 왜!』 『아빠가 부르는데 왜 또 짜증부터 내냐.』 『그냥 말을 해! 뭐!』 『여기 있던 돈 어디로 갔어.』 그가 양말을 뒤집어 보여주며 말했다. 『몰라, 엄마가 말하지 말라 그랬어.』 『엄마가 왔었어? 왜 아빠한테 전화 안 했어.』 『엄마 오면 전화하라고 시킨 적 없잖아! 짜증나 진짜!!!』 온갖 설움에 바닥을 뒹굴거리며 울었다. 『그런 거는 말 안 해도 당연한 거지. 참나, 울지 말고 새끼야. 다음번엔 엄마 오면 바로 전화해.』

그는 고추장 한 수저를 푹 떠서 덜어 놓고 마른오징어를 구워 상에 올렸다. 전날 마시고 남은 소주를 따라 마시면서 구운 오징어는 입에도 대지 않고 한숨을 안주 삼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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