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그레이 Jul 22. 2024

열받게 하더니 해열제를 주는 거야?!

나의 온도를 아는 사람


나의 온도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어느 날, 크게 아픈 곳은 없지만, 평소보다 쳐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후가 될 때까지 누워서 휴대폰만 보다가 일어났다. 냉장고 청소할 때가 되어서 오르카에게 냉장고 청소를 부탁한 뒤 다시 누웠다.

시간이 한참 지났고, 얼추 청소가 끝난 것 같아 확인을 하러 갔다. 그. 런. 데 ‘냉장고’ 청소를 하라 했다고 해서 냉동실은 손도 대지 않고, 정말 ‘냉장’ 고만 청소해 놓은 게 아닌가! 순간 화가 나서 열심히 잔소리를 해댔다. 오르카는 냉동실을 청소하기로 했고, 난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돌아서서 떠났다.


그러는 도중 오르카와 팔이 스쳤다. 오르카는 곧바로 나를 불러 세웠다. 난 청소 문제로 예민해 있는 상태라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왜!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가르쳐야 해?! 알아서 좀 해!!!” 그러나 오르카는 “아니,, 당신 몸이 왜 뜨겁지?”라고 말하며 체온계를 가져왔다.


열을 재보니 38도씨로 고열이 나고 있었다. 그제야 몸이 쳐졌던 이유를 알게 되어 약을 먹었다. 나는 평소 열이 나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하는 편이라, 언제나 오르카가 먼저 알아차린다. 나와 살이 닿는 그 순간 열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아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만 닿더라도 금방 알아차리고 체온계를 가져온다. 그럴 땐 특별히 감동스럽고, 고마움을 느낀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 체온을 알아주는 한 사람. 내 남편, 오르카가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나의 체온을 아는 사람이 오르카뿐만은 아니다. 사람인 우리는 서로의 적정 체온이 36.5도씨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온도로 서로를 보살필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참 특별한 일이다.


이마에 손등을 대는 것만으로도 이상을 감지하고 약을 주거나,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참 경이롭다. 서로의 체온을 걱정하며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 주는 것, 더운 여름에 부채질해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진정으로 가슴 뭉클한 일이다.


몸의 온도뿐 아니라 마음의 온기까지.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열기는 참 신비롭고 귀하다. 알게 모르게 나누고 거둔 온기를 떠올리며 참 고맙게 느껴진다.


하지만, 냉장고 청소 하라고 했더니 냉동실은 건들지도 않고 정말 냉장고 청소만 하는 답답함이 주는 열기는 그리 반갑지 않다!! 부들부들

이전 09화 그가 사준 명품은 사치가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