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마음을 맡기다: 나이 들수록 더 깊어지는 삶의 선택
2022년, 하와이에서 가장 ‘핫’하다는 워드 지역에 새로 지어지는 콘도를 계약한 우리는 어바인 집으로 돌아온 후, 몇몇 친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안부를 나눈 뒤, 3년의 준비 기간을 정해 하와이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자 지인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나뉘었다.
“두 분께서 결정하신 일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으실 거예요. 맑은 공기, 신선한 농수산물이 있는 곳이라면 건강도 더 오래 유지되겠죠. 축하드립니다. 좋은 선택이네요.”
“왜 그렇게 멀리 가시려는 거죠? 캘리포니아가 훨씬 살기 좋은데요. 덥고 습한 하와이라니, 거긴 너무 고립되어 있잖아요. 동문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요.”
“하와이는 물가가 너무 비싸요. 집값도 그렇고 관리비도 장난 아니에요. 아일랜드 피버도 심하다던데요. 1년쯤 지나면 삶이 무료해져서 오래 살기 힘들다던데요.”
“하와이 정말 좋은 곳이에요. 한국과도 가깝고 미국 본토와도 연결되고요. 미세스 홍에게는 특히 노후에 잘 어울리는 장소 같아요. 잘 결정하셨어요.”
그 모든 말이 걱정과 염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니까.
하지만 이미 우리는 하와이의 다정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마음은 벌써 바다 건너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하와이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노인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고, 남편은 평생 품어온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와이는 지리적·환경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가장 잘 맞는 공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온화한 기후, 깨끗한 물, 세계 각국의 식재료가 모이는 곳.
그곳에서의 삶을 우리는 구체적으로 계획했고, 이사를 앞두고 주변 인프라와 시장, 의료체계에 대한 조사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콘도 계약은 팬데믹 말기에 이뤄졌다. 그즈음, 우리는 일주일간의 자가격리를 감수하며 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 건대 근처의 시니어 하우스 겸 호텔에 장기 숙박했는데, 이곳은 남편의 중고등학교 동창 몇 분이 거주 중이었다.
그중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점심 약속을 하게 되었다. 수십 년 만의 재회에 남편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긴 시간 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삶을 나눴고, 자연스럽게 하와이 이주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젊었을 때 나도 하와이에 가본 적이 있네. 정말 좋은 곳이었지.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아마 그런 곳일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 나이가 아흔이잖아. 3년 뒤에 이사 간다니,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난 상상도 못 했네.”
그 친구의 눈에는 충격과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지난 서울 방문이 참 보람 있었다니 반가운 소식일세.
태평양을 거리낌 없이 오가는 자네의 건강과 활력 넘치는 태도에 진심으로 축하와 경의를 표하네.
건강 잘 챙기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네.”
남편의 인생관은 친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인생을 다시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언젠가는 하와이에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노인’이라는 사회적 프레임으로 보면, 이 같은 이주는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기 결정권의 실현”**이라고 믿었다.
90이라는 숫자에 삶을 가두고 싶지 않았다.
비록 신체는 늙을 수밖에 없어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유연함은 살아 있는 존재의 특권이다.
남편은 그 유연함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곧 우리 삶에 지지와 용기를 더해주는 촉매가 되었다.
해가 떠오르면 우리는 일어나 해변을 함께 걷는다.
라나이(하와이어로 ‘발코니’)에 앉아 함께 아침을 먹고, 하와이 현지 음식과 세계의 식재료로 소박한 식탁을 차린다.
이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감사할 줄 아는 삶이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로서, 그저 서로의 손을 잡고 하와이라는 공간을 조금씩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단지 ‘하와이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에 마음을 맡기고,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