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Dec 11. 2022

5살 아이에게 들켜버린 속 마음

엄마 머릿속은 빨리빨리로 가득 찬 거 같아

언어 습득이 빨랐던 둘째가 5살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바쁜 아침 시간. 후다닥 준비해서 신발을 신기고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다. 사실 아이는 바쁘지 않다. 그저 아이를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고 쉬고 싶으니 서둘렀을 뿐.


 갑자기 신발을 신던 아이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엄마, 엄마 머릿속은 빨리빨리로 가득 찬 거 같아.” 

 “어?”


 뭐지? 이 어린아이가 나를 꿰뚫고 있는 건가? ‘미안하다, 엄마도 쉬고 싶어서 그랬어.’라는 솔직한 대답 대신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젤리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하고 놀아야 하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 버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 생각에 한참 머물렀다. 16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참 많이도 들었던 그 말.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실은요 그래요. 나 힘들어요. 막 소리치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내 진심이 표출되었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그 말 이제야 시원하게 내뱉어 본다. 엄마는 힘들었어. 떨어지는 낙엽을 봐도 지금이 가을인지 모를 만큼...    


 그렇게 힘겨운 가을을 보내고 여러 해의 겨울을 만나 이제야 봄 다운 봄을 맞이하는 엄마가 되었다. 사계절이 온전히 시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아이들의 편지로 알게 되었다. 지난 추석 첫째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쓴 편지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 아빠, 엄마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빠, 엄마를 키워주셔서 저희가 있을 수 있었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콩이 올림   

  

 그리고 5월 어버이날쯤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아이의 손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한 송이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

 저 젤리에요. 엄마 아빠께서 저를 키워주신 은혜 저가 아직 어려서 다 갚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 아빠께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너무 고마워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젤리 올림     


 짧은 편지로 받은 감동의 여운은 쩍쩍 갈라져 생명을 잃은 땅에 한 줄기 빗방울이 되어 마음의 갈증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물만 주면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꽃을 피워 열매라는 선물을 주는 나무처럼, 내가 아이들에게 준 것은 어설픈 사랑이었고 사랑받아 자란 아이들은 행복이라는 꽃을 피워 우리 집을 향기롭게 했으며 성장이라는 열매를 통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감사한 40대를 마주하고 있다. 지나고 보면 다 그리운 과거가 될 오늘이 조금만 더디게 가길...



 

매거진의 이전글 30대 너무 이른 마지막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