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너무 이른 마지막 안녕
30대의 마지막을 고시 공부에 쏟아부을 때였다. 적막감이 감도는 칙칙한 독서실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소리 없이 책을 넘기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너 가을이 기억하지? 며칠 전에 하늘나라에 갔대. 그냥 너도 알던 친구니까 소식 전해.”
가을이가 혈액암이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서 발병 후 1년도 안 돼서 어린 아들과 딸을 남기고 먼 길을 갔다고...
가을이는 나와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녔고 글쓰기를 잘해서 늘 백일장에서 상을 받던 아이였다. 내 머릿속 가을이는 친구들에게 단 한 번도 화낸 적 없는 따사로운 봄 햇살 같은 친구였다. 졸업 후 얼굴 맞대고 만난 적은 없지만, 페이스북으로 가을이의 중국 유학과 결혼 소식을 전해 들었고 난 늘 응원했다.
하지만 앙상한 가지에 단풍잎 서너 장 남아있는 이맘때 너는 떠나버렸고 벌써 3년이 되었구나. 알람을 해둔 것도 아니고 달력에 메모해둔 것도 아닌데 항상 네가 생각나는 12월이야. 친구들에게조차 투병 소식을 알리지 않고 남편이 전한 너의 부고 소식은 너무 마음이 아팠어. 가을아 보고 싶다. 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가슴 시리게 이 계절을 보내고 있을 거야. 친구들에게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미리 알았더라면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손 한 번이라도 따듯하게 잡아주었을 텐데... 떠나는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를 잡고 눈물 흘린 아가들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얼마나 그 손을 계속 잡고 싶었을까...
아직 그리 긴 생을 산 건 아니지만 이별은 언제나 힘들고 슬프다. 떠난 이는 떠난 대로 남겨진 이는 남겨진 대로 그 이별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기약 없는 헤어짐보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이 가장 슬프다. 누군가는 이별을 미리 준비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짧은 안녕은 반가움으로 돌아오지만, 마지막 안녕은 눈물로 얼룩진다.
사람들은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마치 무한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간다. 서로 상처 주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그리 살 이유가 없음에도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20대 내 일기장에는 억울함만 가득했다. 그저 곁에 있는 누가 미웠고 그 사람의 말이 싫었고 왜 내 인생에 참견하는지 일기장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불만투성이였다.
하지만 40대가 되어 나의 20대를 떠올리면 불만으로 얼룩졌던 흔적은 없고 무지개처럼 반짝반짝한 기억만 난다. 어쩌면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선별적 기억력이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도 있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상처 치유는 약으로 될 수도 있고 세월로 될 수도 있다. 내 몸 어느 한구석에 남아있는 상처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억 속 한 부분을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디 내가 그 기억 속 상처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보고 싶은 사람은 생각날 때 미루지 말고 보아야 한다. 어제 한 인사가 짧은 안녕 일지 마지막 안녕 일지는 누구든 알 수 없으니. 다시 만나게 되면 와락 안을 테다. 친구와의 마지막 안녕을 떠올리며 오늘만은 온전히 가을이의 기억으로 채워본다.
“가을아 나는 네가 너무 기억나. 보고 싶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