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소시지와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분홍 소시지와 진미채 볶음, 소고기구이 그리고 콩나물국이다.
분홍 소시지를 먹으면 항상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는 00 초등학교 졸업으로 바뀌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야간자율학습이라 칭하고 야간강제학습 때문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갔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 엄마는 도시락과 아침밥을 챙겨 놓고 밥상에 꽃무늬 면포를 씌워두셨다. 어렸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 밥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갔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엄마는 도시락을 싸놓는 날보다 그냥 밥만 해놓고 일터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녁상에 남아 있는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도시락 싸갔던 날이 더 많았다. 엄마의 고단함을 알기에 한 번도 투정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도시락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내 도시락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이렇게 김치만 싸간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내 도시락은 비엔나소시지, 진미채 볶음, 야채 참치를 싸 온 친구들 도시락만큼 인기가 좋았다. 우리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다. 그래서 김치도 세상 맛있게 잘 담근다.
하지만 일주일에 2~3번 김치만 싸가다 보니 어떤 날은 김칫국물이 흘러서 책 옆 모퉁이가 주황색으로 물든 날도 있고 또 여름에는 김치 쉰내가 가방에서 폴폴 나서 얼른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바쁜 엄마였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분홍 소시지, 계란말이 같은 반찬도 싸주셨다.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이 상위에 놓여 있으면 그날은 학교 가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일하느라 바쁘고 고단한 엄마였지만 운동회나 소풍날만큼은 특별히 신경 써서 도시락을 싸주셨다. 운동회 날에는 햇밤, 땅콩을 삶아 오셨고 점심시간에는 꼭 중식당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셨다. 소풍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손수 맛있는 김밥을 싸놓고 일터로 나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이 나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었다. 충분히 감사하다.
분홍 소시지만 먹으면 발걸음 가볍던 그날의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