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Dec 24. 2022

신박한 커닝의 최후

그땐 그랬지

신박한 커닝의 최후

    

한 학교가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가 같은 운동장을 공유하고 이사장이 같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섞여서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본다. 한 줄은 중학생이 또 한 줄은 고등학생이 앉아서 시험을 본다. 커닝을 예방하기 위한 학교의 전략이었다. 단 시험을 일찍 마친 학생은 복도로 나가서 기다릴 수 있었다.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날 친구들이 숙덕숙덕한다.

“야 우리 이번에 커닝해 볼래?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어떻게 하는 건데?”

      

그리고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벼락치기는 자고로 학생의 숙명이다. 방학 숙제도 개학하기 전날 하는 벼락치기가 제맛이다. 밀린 일기 쓰느라 그날 날씨를 표시해야 하는데 당연히 기억날 리가 없다. 구석에 처박혀있던   묵은 신문을 모조리 꺼내 날씨를 찾아본 기억이 있다.

      

시험은 말해 뭐 해. 벼락치기의 대가인 나는 전날 밤샘을 통해 머리에 글자들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다음날 시험지에 얼마나 촤라락 한 번에 잘 쏟아내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욱여넣었던 것이 다림질이 잘 되면 성적표는 당당히 엄마 손에 들어갈 테고, 머릿속에서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나오기를 거부하면 그 성적표는 영원히 세상과 마주하기 힘들 것이다. 선생님이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하면 가계부를 슬며시 들여다본 뒤 엄마의 필체를 흉내 낸 다음, 선생님께 제출하면 뒤탈이 없었다.

      

중간고사를 칠 무렵이었다. 무슨 과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50분의 시험시간 중에 거의 시험이 마무리되기 직전이었다. 교실 안에는 10명 안팎의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신경 쓰였지만, 시험지에 집중했다. 교실 밖에선 연예인 이야기로 점점 소음이 심해졌다.


“야 18일 hot가 온대.”

“5일에는 듀스가 가요톱텐에 나온다고 하던데?”

“1일에는 김원준이 콘서트 한대.”


결국 선생님이 복도를 향해 소리친다.

“복도에 있지 말고 운동장으로 나가세요!!”

순식간에 절간처럼 복도는 조용해졌다. 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시험시간은 끝이 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교실은 여기저기서 네 답이 맞네, 내 답이 맞네 하며 답안을 맞춰보느라 시장통 같았다.

    

그때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야 18번 문제 답은 5, 5번 문제는 2, 1번 문제는 답이 1번이야.”

“야 나 다 들었어. 그래서 그대로 답 체크했지. 진짜 고맙다 친구들아. 너희들은 진짜 내 베프야!!”

    

무슨 말이고 하니 복도에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연예인 이야기가 실은 커닝 비법이었다는 것이다.

“야 18일 hot가 온대.” 이 말은 18번 문제의 정답은 hot의 멤버수가 다섯 명이니 정답이 5번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날짜는 문제지의 문항 번호였고, 가수 인원수는 그 문제의 정답이라는 것이다. Hot는 다섯 명이니 정답이 5번이고 듀스는 두 명이니 2번, 김원준은 솔로니까 답이 1번이라는 것이다.


‘정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싶다가도 ‘그런 아이디어로 공부나 좀 더 하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고맙다고 인사하던 친구의 웃음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친구가

“야 18번 답 3번이야. 무슨 소리야!!”

하고 산통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신박한 커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답의 향연이었다. 복도에서 불러준 답들이 하나같이 다 오답이었던 것이다. 고맙다던 그 친구의 후회하는 목소리가 교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야!! 내가 원래 3번 찍었는데….”


후회해도 어차피 쏟아진 물이다. 그럼 그렇지, 세상은 참 공평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걸 겨우 삼켰다. 세상에 신박한 커닝이 있을 리가 있나? 요즘 같으면 야단법석이 날 일이지만 그때는 웃고 지나갈 수 있었던 추억 속 한 장면이다.


쉬는 시간마다 깔깔대던 2학년 2반 교실의 소음이 문득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주인공처럼 살아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