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Jan 18. 2023

어설픈 소설-겨울이 싫은 이유

엄마 엄마 엄마

 

  “여보 손 좀 봐요.”

손등에 피가 난다. 온갖 보습제를 바르고 병원에 다녀봐도 거친 손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처럼 여기저기 검게 마른 핏자국뿐이다.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거친 손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태어난 후 엄마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큰형수가 엄마인 줄 알고 자랐는데 10살이 될 무렵 더는 키워줄 힘이 없으니 이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 길로 고아가 되었다. 이 집, 저 집 머슴으로 지내면서 겨우 입에 풀칠만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한겨울에 땔감을 구하러 푸석푸석한 산에 오르면 부러진 나무에 이리저리 상처가 나서 손등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여름이면 소여물을 뜯으러 들판으로 나가야 했고 초록의 생명을 지닌 풀은 생명을 잃기가 두려운지 낫을 가까이 대면 더 날카롭게 내 손을 긁어댔다. 언제쯤이면 이 고된 일에서 해방이 될지 당시에는 내 숨이 멈춰야 이 고난도 끝이 날 것만 같았다. 밥숟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도 없는 지친 몸을 이끌고, 온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방구석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리고 매일 생각했다. 나에게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떠돌이 생활에 지쳐갔다. 그러다 어느 시골 빈집에 들어가 여기가 내 집인 양 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 누구도 나에게 집주인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농사일 잘하는 젊은이가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집 일을 끝내고 나면 저 집에서 나를 찾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니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아 송아지 한 마리를 샀다. 해 질 무렵 집에 돌아오면 나만 바라봐주는 송아지가 내 가족이었다. 여물을 주며 너도 엄마 없는 신세가 나와 같구나 싶어 괜히 짠해졌다. 그렇게 송아지가 소가 되고 한 마리였던 소가 두 마리, 세 마리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문득 더는 소만 키우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키우던 소를 팔고 도시로 향했다. 도시에서 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갔다.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돈이 있다는 것이니까.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갔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일복 터진 나는 여기서도 인기 있는 일꾼이 되었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1년, 2년 시간이 지나니 장판 밑에 돈이 수북해졌다. 돈은 넘쳐났지만, 은행에 갈 수가 없었다. 내 이름도 못 쓰는 문맹이었다. 몸 쓰는 일을 하기에 글 따위는 필요치 않았던 삶이었다. 장판 밖으로 돈이 삐죽 나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일터로 나가는 아침마다 문단속을 더 열심히 했다.

     

그러다 키가 작고 다부진 여인을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국밥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국밥집 단골이 되었고 그녀는 내가 갈 때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수북하게 국밥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말하지 않았는데 밥도 한 그릇 더 가져다주었다. 또 어느 날은 다른 손님상에는 없는 반찬이 나왔다. 그런 그녀에게 자꾸 눈이 가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사실 결혼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빈손이었던 그녀와 장판 밑에 돈만 수북한 단칸방에서 한 이불 덮고 자는 게 결혼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한글을 알고 있었다. 그녀 덕에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내 이름 ‘이광수’가 적힌 통장을 손에 쥐었다. 이광수는 알았지만 어떻게 쓰는지 어떤 모양인지 몰랐다. 눈으로 외웠다. 무작정 이광수 이광수 수십 번 수백 번 썼다. 그저 내 이름 이광수가 좋았다. 이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아내가 된 그녀가 한글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그녀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기역, 니은, 디귿, 가, 나, 다 한글이 이렇게나 재미있는지 한 글자 한 글자 배울 때마다 길거리 간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 간판이 입 밖으로 뱉어졌다. 같이 걷던 사람들이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그저 미소만 지었다. 한글이 내 눈과 내 손 내 몸에 자리 잡을 때쯤 가게도 시장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익은 사람이 지나간다. 예전 같은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안면은 있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이. 반갑게 인사를 해와 차 한잔하고 가라며 가게 안으로 불렀다. 뜬금없이 형수이야기를 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그 이야기. 그리고 내가 모르는 엄마 이야기를 한다.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그는 떠났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이 남긴 생채기는 손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 하나 남기지 않고 따가운 가시가 되어 몸 여기저기를 마구 찔렀다.

     

그날 밤 뜨끈하다 못해 발 닿으면 데일 듯한 누런 온돌 바닥이, 지난날 온기 하나 없던 시골집 방구석처럼 시리기만 했다. 이불을 덮고 또 덮었지만 오한이 들었다. 아내가 감기약을 챙겨주었다.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혓바닥에서 맴돌기만 했다. 결국 쓴 기운만 입안에 남긴 채 약을 뱉어냈다. 그리고 울음도 뱉어냈다. 아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안아준다. 마치 다 아는 듯 내 엄마처럼 나를 안아준다. 울다 지쳐 눈을 떠보니 새벽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물 한 사발을 들이켰다. 엊저녁 삼키려고 애쓰던 감기약이 눈에 보여 얼른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냉수 한 사발로 약을 몸속 깊이 보냈다. 손 끝 발 끝마다 박혀있는 가시마저 치유되기를 바라며... 겨울이 싫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생겼다. 피딱지가 생긴 손이 다시 가렵기 시작한다. 긁어도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손이 더 흉해진다. 가슴 한켠에 긁지 못하는 가려움도 생겼다. 엄마 엄마 엄마.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가 전해 준 엄마 이야기...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엄마는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누명으로 억울함을 증명하지 못해 억울해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었는지는 본인도 모른다고.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눈이 부신 어느 추운 겨울날 동네 우물에 몸을 던져 사라져 버렸다고... 우물에 비친 엄마 얼굴을 엄마도 분명 보았을 텐데 왜 갓 태어난 나를 버리고 엄마는 끝이 안 보이는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을까...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린, 얼굴 한 번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내 엄마. 왜 하필 추운 겨울 그 많은 날 중에 눈이 부신 그날이었을까... 왜 형수는 억울한 엄마 이야기를 동네사람들에게 하고 다니는 것일까...            


        


비비작가의 더 많은 글 만나기


https://brunch.co.kr/@viviland/33


#소설#어설픈소설#습작#비비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