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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Nov 28. 2022

당신에게는 희망통장이 있습니까?

연년생 엄마아빠의 희망통장은 '쉼'이다

2022년 6박7일 지중해 크루즈에서 찍은 노을


 “이혼해!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한테 다짜고짜 울면서 이야기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애들이 말 안 들었어?”

 “엉엉 애들 때문에 진짜 미쳐버리겠어. 엉엉. 둘을 분리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여보랑 나랑 하나씩 맡아서 키우자.”

 “일단 진정해. 방에 가서 쉬고 있어.”


 거짓말 조금 보태서 5분마다 싸우는 연년생 남자아이 둘은 나의 멘털을 수시로 나가게 한다. 나의 유리 멘털을 부여잡아 주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동갑내기인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참 이성적이며 차분한 사람이다. 감성적이다 못해 눈물도, 감정조절도 남다른 나를 어르고 달래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감정의 저 밑바닥까지 다 보여줘도 나를 위로해 줄 단 한 사람이다.


 남편이 아이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갑자기 연극을 하자고 했다.

 “여보가 밖에 나가서 커피 마시고 머리 식히고 아이들 잠들면 집에 와.”

 본인이 아이들에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엄마가 너희 둘 싸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한다고, 앞으로 둘이 덜 싸우도록 이야기할 테니 일단 기분을 좀 풀고 오라는 뜻이었다. 이런 센스쟁이 신랑을 봤나!! 남들은 남편이 로또라고 하는데(45번 중에 단 하나의 번호도 맞는 게 없다는 그 로또...) 나에게 남편은 진짜 로또 1등보다 더 감동적인 사람이다.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동네 주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남편한테 전화가 온다. 미안한데 첫째가 너무 많이 울어서 진정이 안 되니 이제 그만 들어와야겠다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첫째와 둘째가 와락 안기면서

 “엄마 미안해요. 이제 진짜 안 싸울게요. 다 저희가 잘못했어요.”

 하고 눈물로 사과한다.      

 “엉엉. 엄마도 소리 지르고 화내서 미안해.”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들어오니 안심이 되었던지 금세 잠이 들었다. 온종일 일터에서 씨름하고 온 남편의 고단한 얼굴이 그제야 보인다. 밀물처럼 미안함이 밀려온다.

 “여보 미안해. 그런데 나는 진짜 애들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여보 때문에 살아. 내가 하소연할 데가 여보뿐이야.”

 “괜찮아. 우리 아이들이잖아. 여보가 제일 수고가 많지. 힘들면 친구들이랑 여행이라도 다녀와. 내가 휴가 줄게.”


 “내가 휴가 줄게”이 한마디로 우리 부부는 육아로 지쳐있을 때마다 서로에게 쉼을 선물하기로 했다. 바로 ‘엄마, 아빠 휴가’이다. 나와 남편은 온전히 둘의 힘으로 16개월 차이 연년생 남자아이들을 양육했다.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시댁이나 친정에 맡겨본 적이 없다. 물리적인 거리가 먼 것도 있지만, 양육은 엄마 아빠가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누구보다 서로가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1년에 한 번씩 4박 5일 정도 각자만의 휴가를 주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나의 첫 휴가는 싱가포르 공항 인턴 시절 룸메이트 동생들과 4박 5일 괌 여행이었다. 첫 여행은 아이들이 나 없이도 잘 지내는지, 남편은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걱정 반, 즐거움 반이었다. 하지만 매년 남편이 주는 '쉼'이 늘어날수록 걱정은 제로로 바뀌었고 온전히 나만의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 남편도 매년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서로 내색하지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 느낌 나도 아니까. 코로나로 인해 잠시 서로에게 주는 '쉼'은 멈추었지만 언제든지 어딘가로 떠날 준비는 되어있다.

 

 우리 부부에게 ‘엄마 아빠 휴가’는 건강하고 행복한 자녀 양육을 위한 희망통장이다. 그 통장에 육아의 즐거움, 행복, 고통, 어려움, 기쁨, 서로에 대한 격려와 믿음을 적립한 뒤 매년 만기에는 여행이 주는 설렘과 추억으로 바꾼다.


 이제 11살, 12살이 된 16개월 차이 연년생 남자아이 둘은 내 인생 최대의 과제이자 난관이며 풀 수 없는 문제이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그 답이 옳은 건지 그른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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