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몰타의 바다
몰타에 처음 왔을 때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처음으로 작은 보트를 타고 코미노섬에 갔다. 코미노섬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바다색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이곳이야말로 지상낙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중해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니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꿈꿔 본 적도 없었던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도 나도 자가격리 하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지중해를 만끽했다.
그리고 2022년 몰타의 5월. 우리는 두 번째 코미노섬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감흥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아 더 기대가 컸던 두 번째 코미노섬.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5월 코미노섬은 해파리 천국이었다. 배가 점점 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보랏빛 물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섬에 도착하자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번 투어는 단독 투어가 아니었기에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 코미노섬 여행은 실패였다. 조금이라도 깊은 물에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Jellyfish!!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몰타에 와서 해파리에 물려본 아이들은 기겁하며 바다 밖으로 뛰쳐나오기 바빴다.
해파리에 물리면 화상을 입은 듯한 엄청난 통증과 함께 바로 피부가 붉게 변하고 물린 곳은 금방 수포가 잡힌다. 해파리한테 심하게 쏘인 지인 아이는 대성통곡을 했고 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통증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몰타 약국에는 해파리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도 팔고 밴드도 판다. 그만큼 몰타에서 해파리는 일상이 된 듯했다. 코미노 섬에서는 해파리에 물린 곳에 식초를 발라주는 곳도 있었다.
몰타 해파리는 코미노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 근처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하필 우리 둘째는 해파리한테 얼굴 전체를 쏘이는 바람에 한동안 얼굴 상태가 심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실로 엄청났다. 얼굴 전체가 퉁퉁 붓고 고열을 앓고 나면 피는 열꽃이 얼굴 전체에 쫙 퍼졌다. 아직도 아이 얼굴에는 해파리한테 쏘인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몰타에서 바다 수영을 한다면 들어가기 전 해파리가 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을 먼저 꼭 해야 한다.
몰타에서 처음 바다 수영을 하던 날이 기억난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수영을 배웠음에도 바다 수영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지 구명조끼를 찾았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지자 나중에는 스티로폼으로 된 누들이라 불리는 수영 보조용품을 이용했다. 매일 반복되는 수영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어느 순간 아이들은 물개처럼 지중해 바다를 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 해도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니 나의 불안한 시선은 늘 아이들 곁에 맴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어찌나 신나게 바다를 누비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아이들과 지중해 바다 사이 친밀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몰타에서 보통 5월부터 10월 초까지 바다 수영이 가능하다. 물론 그 기간 외에도 수영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찬물에 샤워를 못 하는 나란 사람은 한여름이 아니고서야 바다 수영은 엄두도 못 낸다. 더욱이 외국에서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아이들에게도 조금만 더 참으면 곧 수영할 시즌이 온다며 어르고 달래다 보니 5월이 오긴 왔다.
한국과는 달리 몰타에서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가야 할 태권도 학원이나 피아노학원 스케줄이 없었다. 고로 5월부터 우리의 일과는 하교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매일 바닷가로 출근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주로 수영한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슬리에마 엑사일 비치 그리고 마노엘 섬이었다. 매일 슬리에마 비치에만 갔었는데 어느 날 지인이 마노엘이 참 좋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마노엘에 간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마노엘 섬은 우리 집에서 차를 타를 타면 10분이면 되는 거리였으나 문제는 차에서 내려 수영할 수 있는 바다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마노엘섬은 사유지라 입구에는 경비가 있다. 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지중해의 따가운 해를 받으며 10분 이상 걸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더운 날씨 때문인지 너무 힘들다며 집 근처 바다에 가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왔냐며 투덜거렸다. 아이들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폐건물 사이를 지나 큰 나무숲을 가로질러 언덕을 넘어가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제야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아이들도 바닷바람을 느꼈는지 갑자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나타났다. 저 멀리 유독 평평한 돌이 보였다. 지인은 저곳이 바로 명당이라며 후다닥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 짐을 풀기도 전에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식히고자 바다에 발을 담가보았다. 발등을 타고 바닷물의 한기가 등줄기까지 도착했다. '그래 이 맛이지. 바로 이 맛으로 바다에 오는 거지.' 하며 마노엘 바다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우리가 자주 가던 슬리에마 비치보다 물이 더 깨끗했다. 같은 지중해지만 물빛이 달랐다. 처음 마노엘섬에 갔던 날 아이들은 두 번 다시는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또 다른 지중해의 맛을 느꼈던지 또 가자고 했다. 그렇게 마노엘은 우리가 사랑하는 몰타 수영 맛집이 되었다.
마노엘 섬까지 오는 길은 너무 힘들지만 우리가 자주 갔던 또 이유가 있었다. 마노엘에는 해파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덤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가 자리 잡은 곳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발레타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노엘 섬을 설명하자면 수영 맛집이긴 한데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이 많이 찾는 수영 맛집을 방문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노엘섬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사유지라 화장실도 음식을 파는 곳도 없었다. 마노엘 섬에 가려면 먹을 것을 잔뜩 챙겨 가야 한다. 수영을 하고 난 뒤 찾아오는 허기에는 무엇보다 라면이 제격이었다. 그때 먹은 신라면의 국물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또한 비릿한 바다 냄새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는 인생 최고의 한 모금이었다. 술을 안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마저 좋다! 좋다!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마노엘 섬이었다. 몰타 바다에서 진심으로 행복하고 평온했던 아이들과 나.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요즘 아이들도 나도 몰타의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몰타에서의 하루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