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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완 Mar 01. 2024

4. 청년내일채움공제 ②-1

나는 ‘회사=의자 다리론’을 항상 믿고 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인생에 이런저런 풍파를 맞으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첫인상을 무시하지 말자.’였다. 나는 촉이나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인데, 희한하게 ‘첫인상’만큼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첫인상’을 스스로가 무시한다는 점이었다. 사회에서 만났던 상사와 출입처 직원들의 ‘첫인상’ 중엔 도망쳐야 하는 기운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그냥 버텼고, 결국엔 호되게 당했다. 사실 두 번째 직장 면접을 봤을 때도 ‘도망쳐’라는 기운을 느끼긴 했다. 그렇지만 어리바리 인생을 살아온 나는,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직장 면접에서 만난 대표는 아주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자신은 옳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언론인이며,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이 그런 모습이긴 했다. 각자의 신념들이 있었고, 그것이 옳기에 밀고 나가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신념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워왔을 것이고, 다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존중했다. 그런데 그들의 일부는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말했다. 내 두 번째 직장 대표가 그런 사람이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2년 정도를 버티고 갈리고 갈려서 소진되고 있을 무렵, 문득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2년 전에 했던 대화인데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면접에서 대표는 내게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있다고 답했다. 대표는 그런 책이 있냐고 하면서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나는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답하긴 어렵지만, 과연 지금 사회가 공정한지, 능력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현 사회가 옳게 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라고 답했다. 그 답에 대표가 답했다. 


“그렇군요. 근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받는 지원이 너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세대는 더욱 힘들게 그 자리들을 쟁취해 왔죠. 공정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너무 쉬운 길만을 택하려는 태도 같네요. 물론 제가 그 책을 읽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요.”


분명 나는 그때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 않은 책을 얘기하는 것, 자신과 다른 세대에 대해 쉽게 정의하는 것, 모두 내가 경계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엔 딱 두 가지만 떠올라 있었다. ‘사대보험이 되는 직장,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화부 기자.’ 면접에서 합격만 한다면 일하고 싶었다.




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에도 ‘도망쳐’의 계시는 또 한 번 있었다. 대표는 내 입사 이후 나의 면접 경쟁상대였던 인물에 대해서 얘기했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한국에서는 석사까지 마친 인물이며, 조선일보 미술 비평까지 등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예전부터 우리 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미술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 경험이 전무해서, 그래도 기자 경험이 있는 나를 뽑았다고 말했다. 굳이 내게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두 번째 회사를 입사할 때도 나는 그렇게 좋은 정신건강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한 번의 히키코모리 생활과 2년간 사회에서 떨어진 시간을 보냈기에 스스로 낙오자라고 생각했다. 입사 당시 내 목표는 6개월 동안 회사 다녀보기였다. 첫 직장을 5개월 만에 퇴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개월을 다니게 되면, 그때 한번 내채공을 가입해 보자는 결심을 했다. 


다행히 나는 6개월간 두 번째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경제부가 아니라 문화부였기에 좀 더 편안하게 기사를 쓸 수 있었고, 첫 번째 회사보다 업무 강도가 약했다. 면접 당시 대표가 자신의 매체가 대단한 회사인 것처럼 으름장을 놓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기자가 나 포함 2명 있는 굉장히 작은 신문사였고 전체적으로 회사 체계가 하나도 잡혀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자율성이 높았고, 그것은 내게 큰 이점이었다. 한마디로 매체의 ‘쪼’가 없었다. 입사 후 한 2개월 동안 대표는 내 기사에 이곳저곳을 뜯어고쳤지만, 3개월 차부터는 알아서 검토하고 기사를 발행하라고 했다.


문화부 기자 일은 정말 즐거웠다. 내가 사랑하는 전시를 매일같이 보러 다닐 수 있었고, 작가님들의 세계관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언어로 적어서 보도할 수 있었다. 기자이기 때문에 말랑한 언어는 지양하고 적확하고 객관적인 설명을 주로 담아내는 데에 노력했다. 그럼에도 기사에서 한두 문장 정도는 내 생각을 넣었다. 그게 기사를 작성하는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매체에 소속된 기자이기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가령 대표 지인의 전시 홍보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거나, 대표가 높게 평가한 작품이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찬사의 기사를 써야 했다. 제일 힘든 일은 기자를 초청할 예정이 없는 토론회나 학술회에 불려 가 (대게 대표의 지인, 스승이었다) 내용을 요약하고 보도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직장 일이란 다 그런 것이고,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는 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회사=의자 다리론’을 항상 믿고 있었다.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때, 그나마 말이 조금 통했던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그 선배는 직장은 의자와 같다고 말했다. 4개의 다리가 있는 의자는 아주 안정적인 의자지만, 다리가 3개만 있어도 의자가 그 용도는 한다. 그럼 만약에 의자 다리가 2개면 어떻게 될까? 의자 다리 2개와 거기에 앉은 사람의 다리로 버텨서 어떻게든 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의자에 다리가 하나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의자는 의자가 아니게 된다. 


선배는 말했다. 급여, 복지, 업무적 만족도, 동료가 다 좋으면 최고의 회사이고 여기서 하나씩 제하더라도 두 개까지 남는다면 버텨볼 수 있는 회사라고 했다. 내 두 번째 회사는 사대보험과 동급이 된 급여, 업무적 만족도가 충족되는 회사였다. 두 개의 의자 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채공 만기까지 7개월 정도 남았을 무렵 나의 두 의자 다리가 삭아가기 시작했다.


2021년 4월 회사에 입사하고 2023년 11월 퇴사까지 나는 두 번의 최저임금 인상을 겪었다. 두 번째 직장에 입사할 때 나는 내 연봉을 깎아서 들어갔다. 잘못된 선택이긴 했지만, 당시의 내 정신건강 상태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애초에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기에 1년이 지나 임금 인상이 돼도 내게 큰 득이 되진 않았다. 그런데 연차가 쌓여서 인상된 급여 수준에 비해 대표의 업무적 요구량은 커지기 시작했다. 주말 근무와 야근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수당은 없었다. 기자이기에 외근이 많았지만, 그에 대한 교통비 지급도 없었다. 회사 체계가 잡히지 않은 허점은 결국 근로자에게 독이 되기 시작했다. 임금에서 제하는 세금이 정확하지 않았으며, 연말 정산도 해주지 않으려 했다.




회사 비품도 구매하기 힘들었다. 대표는 이상한 고집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은 맥심모카골드의 가루 커피가 맛있어서 그것을 먹는다며 직원에게도 그걸 먹길 은근히 강요했다. 회사의 유일한 직원인 선배와 나는 돌아가면서 카누를 직접 사서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을 직원인 우리가 사 먹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고, 회의 시간에 커피를 사달라고 요청했다. 대표는 알겠다고 했지만, 왜 너희는 맛있는 맥심모카골드 가루 커피를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선배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회사엔 화장지나 티슈, 물티슈 같은 비품의 체계가 없었다. 그것을 정기적으로 사는 체계도 없었다. 선배도 회사에 근무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어떻게 그런 것들을 처리해 왔는지 몰랐다. 선배와 나는 그것을 대표에게 제대로 요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몇 번 우리끼리 돈을 모아서 티슈와 물티슈를 샀다. 그런데 근무를 오래 할수록 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대표는 임금에 비해 더한 것을 요구했고, 말과 태도에 있어서 직원들에게 아깝다는 티를 마구 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쓰는 모든 것들이 아깝기 시작했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화가 쌓이고 쌓이던 선배와 나는 어느 날 대표에게 두루마리 휴지와 함께 곽티슈를 사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대표는 답했다. 


“두루마리 휴지는 사줄게, 그런데 곽티슈는 각자 알아서 구입하도록.”


다음 날 친구가 내 사무실로 곽티슈 6개를 배송해 줬다. 퇴사까지 10개월 정도 남은 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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