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안에서 내 쓰임을 찾는다는 것

by vivir

일을 하며 오래 붙들게 된 질문이 있다.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은 단지 해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내가 이곳에 실제로 기여하고 있는 자리인가.

그리고 더 깊게는,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바쁠 때보다 오히려 하나의 일이 끝난 뒤 더 선명하게 찾아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의가 정리되고, 결과가 어느 정도 남았을 때 문득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겼는가.

내가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조금 더 나아졌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지나며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가.


처음에는 쓰임을 역할의 크기로 이해하기 쉽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더 중심에 가까운 자리에 가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내가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다.

누구나 처음에는 바깥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에듀테크 산업 안에서는

기획, 개발, 운영, 고객 대응, 서비스, 사업, 데이터, 인프라.

각자의 자리가 다르고, 어떤 자리는 더 앞에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쉽게 눈에 띄는 역할을 더 큰 쓰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한동안은 그렇게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른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중심에 있어도 자기 쓰임을 잘 모르고 흔들렸고,

어떤 사람은 앞에 나서지 않아도 공동체 전체를 오래 받쳐주었다.

겉으로 덜 드러나도 흐름을 안정시키는 사람이 있었고,

늘 말하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전체의 결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면 코스모스를 여기까지 오게 한 힘도 늘 앞에 보이는 자리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조를 붙들고, 관계를 다듬고, 공기를 지키고, 일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쓰임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보다, 내가 있을 때 무엇이 살아나는가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문제를 정리하며 쓰이고, 어떤 사람은 방향을 세우며 쓰이고,

어떤 사람은 사람 사이의 긴장을 낮추며 쓰이고, 어떤 사람은 복잡한 구조를 조용히 감당하며 쓰인다.

쓰임은 모두에게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는 사람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쓰임을 찾는 일이 결국 두 가지를 함께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는 이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가를 아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정확히 아는 일이다.

이 둘이 만나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소모된다.

공동체의 목적은 크지만 내 존재의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내 안의 열망은 강하지만 공동체의 흐름과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쓰임은 바깥의 목적과 안쪽의 결이 만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생긴다.


일을 하며 나는 이 둘 중 하나만 붙들 때 사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도 많이 보았다.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버티는 사람은 어느 순간 지치기 쉽다.

반대로 자기 열망은 분명한데 공동체와의 연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오래 외로워진다.

쓰임은 희생만으로 생기지 않고, 자기만족만으로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왜 이 일에 반응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그것이 이 공동체 안에서 어디와 연결되는지를 함께 보아야 조금씩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이 자기 쓰임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남의 자리와 자기 자리를 계속 비교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더 중심에 있는데, 나는 아직 여기 있고.

저 사람은 더 빨리 인정받는데, 나는 아직 준비 중이고.

저 사람은 더 많이 말하는데, 나는 조용하고.

이 비교는 처음에는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오래 가면 사람을 자기 자리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공동체 안에서 쓰임을 찾는다는 것은 남보다 더 커 보이는 자리를 찾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있을 때 무엇이 더 건강해지는가를 알아가는 일에 가깝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때 흐름이 더 정리되는지, 사람들이 덜 지치는지,

문제가 더 정확히 보이는지, 사람과 구조가 더 잘 연결되는지.

아마 쓰임은 그런 장면들 속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자기 쓰임을 찾은 사람에게서 특유의 안정감을 느껴왔다.

그 사람은 억지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남의 속도에 과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과 굳이 다 붙들지 않아도 될 일을 조금씩 구분하게 된다.

그 안정감은 게으름과 다르다.

오히려 훨씬 더 성숙한 책임감에 가깝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내 역할이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조급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쓰임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 역할을 거쳐보기도 하고, 예상과 다른 자리에 가보기도 하고, 해보지 않은 일을 맡아보며 조금씩 알아간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기여할 때 더 살아나는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금방 닳는구나.

나는 앞에서 말할 때보다 뒤에서 구조를 잡을 때 더 깊어지는구나.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자기 결을 알고, 어떤 사람은 반복을 통해 자기 리듬을 찾는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내 쓰임을 찾는 일은 빠르게 결론 내릴 일이 아니다.

오래 관찰하고, 경험하고, 다듬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좋은 공동체는 그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사람을 빨리 분류하고, 빨리 평가하고, 빨리 맞추려 하기보다, 각자가 어디에서 살아나는지를 더 오래 보아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은 단지 배치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된다.


내가 일을 하며 다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쓰임을 역할의 크기로만 판단하지 말 것.

눈에 띄는 자리만 가치 있다고 착각하지 말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들을 더 오래 보고, 더 정확히 알아볼 것.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놓치지 말 것.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이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가.


결국 공동체 안에서 내 쓰임을 찾는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공동체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구조를 더 건강하게 연결할 수 있는가를 살피고,

남의 속도가 아니라 내 결을 기준으로 자리를 다듬어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있을 때 공동체가 조금 더 조화롭고 조금 더 살아 있게 되는 지점을 알아가는 것.


쓰임은 그런 자리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마 좋은 공동체란, 각자가 그런 자기 쓰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서로를 조금 더 오래 기다려주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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