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브르사비 Sep 21. 2020

이곳에선 하루하루가 축제, 셍뜨마히 드라메흐

남프랑스 바닷가 마을의 천진한 여름나기

바닷가 근처의 작은 마을, 모두가 들떠있었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긴장을 내려놓은 둥그런 어깨, 바다의 짠내와 마른 흙냄새가 뒤엉킨 이곳에서 나는 인파 사이에 섞여 라벤더향 아이스크림을 할짝댔다.


백야의 여름날 여덟 시 무렵, 낮에는 그토록 선명하던 세상의 색이 오렌지빛 석양에 물들어 한 가지 색으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시간. 나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숨죽여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억을 되살리는 여름과 조우하는 순간

셍뜨마히 드라메흐(Saintes-Maries-de-la-Mer)는 론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인구 3천명 미만의 작은 마을이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이 여름마다 북적거리는 이유는 가족 단위의 피서객이 근처의 해변으로 몰려들기 때문. 이 시기 최대 50만 명까지 유동인구가 늘어난다고 한다.


25년 만에 이곳을 찾은 남편은 말했다. 어린 아이였던 자신과 젊었던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고. 어머니는 챙 넓은 모자에 흰색 원피스를 입었고, 젊었던 아버지는 군살 없는 마른 몸에 보기 좋게 그을린 모습으로 다섯 살이었던 동생을 목말 태워 이곳을 걸었다고 한다. 칸이나 니스처럼 세련된 바다도 아닐뿐더러 좁은 골목마다 인파가 넘쳐 사실은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다며 남편은 멋쩍은 듯 웃는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프랑스 현지인이 주로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프랑스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라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걷는 동안 내 마음속엔 옅은 행복이 번져갔다. 이토록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 뜨거웠던 공기의 밀도가 옅어져 기분 좋게 피부로 스며드는 열기, 해산물과 향신료 냄새를 풍기는 레스토랑, 소박한 어른들과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까지. 그것은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나의 여섯 살의 여름과도 닮아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꽃무늬 수영복에 조잡한 보석 목걸이와 아버지의 선글라스를 코끝에 걸치고 모래사장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 날의 여름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하며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칸이나 니스가 환상 속의 ‘완벽한 여름’이라면 이곳은 소박하고 따뜻한 ‘현실의 여름’ 이었다.




이곳에선 매일이 축제인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휴가용 별장에서 여름 동안 머무르거나 2박 3일의 짧은 여정으로 여기에 온다. 마을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중심으로 기념품샵, 해산물과 스페인,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5월에는 집시의 수호성인(Saint Sara the Black, Saint Marie Jacobé 및 Saint Marie Salomé)을 기리는 축제가 큰 규모로 열리는데 이 기간에 집시 가톨릭 신자들이 수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행렬은 집시 성인들의 인형을 들고 마을 중심의 교회에서부터 해변까지 행진한다. 여름 내내 투우 경기도 열린다. 마지막으로 꺄마흐그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승마체험과 플라밍고와 백조 등을 볼 수 있는 철새 서식지 방문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고흐와 헤밍웨이, 피카소도 반한

1888년 반 고흐는 쎙뜨마히 드라메흐의 바다와 마을의 풍경에 매혹돼 며칠간 머무르며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당시 백여 가구만 있던 작은 어촌이었다. 고흐는 해변에서 바다에 비친 빛과 수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20 세기 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피카소도 이곳에 머물렀으며, 다양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좌) The Sea at Les Saintes-Maries-de-la-Mer, 1888, (우) View of Saintes-Maries, 1888


천진하고 아름다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문득 사진첩을 열어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황홀한 석양빛 아래 사람들은 눈을 찡그리지도 않은 채 걷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사소한 행복을 본다. 내 기억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꺄마흐그(Camargue) 여행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여행기를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vivre-sa-vie/4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알고 싶은 남프랑스 소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