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집한 것은 우리보다 더 오래 남겨질 운명
루이 앙트완 프하(Louis-Antoine Prat)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연구원 및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그의 부인 베로니크 프하는 르 피가로에서 예술 전문 기자로 일했다. 그들의 컬렉션은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의 프랑스 드로잉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이 두 수집가는 프랑스 예술사에 있어 매력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푸생, 쇠라, 와토, 세잔, 르동의 드로잉 작품들이 그들의 컬렉션의 핵심을 이루며, 드가, 들라크루아, 앵그르 등 이름만 들어도 황홀한 프랑스 화가의 작품 또한 소유하고 있다. 구스타브 모로, 라 이르, 헤스투 등 오늘날에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화가들의 대작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소장품 중 일부는 프랑스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베르사유의 장식물, 자크 다비드의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Andromache Mourning Hector), 앵그르의 오시안의 꿈(The Dream of Ossian) 등 프랑스 회화의 시초와 발전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컬렉션은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여행한다. 부부는 소장품을 박물관에 대여하지 않을 때는 파리 7구에 위치한 자택에 전시해놓고 산다.
부부는 전문 수집가가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인 루이 앙트완은 젊은 날, 자신은 문학가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실제로 7권의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70년, 그들은 결혼 후에야 Ecole du Louvre에 등록해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소르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발렌타인 휴고 컬렉션의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초상화가 첫 번째 구매품. 벼룩시장과 개인 컬렉터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구매하기 시작한 그들은 초반에 큰 규모의 구매를 단행했다고 한다. 그 당시 데셍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아 가격이 높지 않았다고. 그것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실수요? 무척 많이 하죠. 우선 흥미가 사라지고 마는 작품을 사기도 합니다. 때때로 정밀하게 복제된 복제품을 사기도 하죠. 그러나 가장 큰 실수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작품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는 실수했던 사례를 든다. 그루즈의 벌거벗은 여인 그림을 보고 진품 여부를 의심했던 루이 앙트완은 구매를 보류했고 결국 그의 친구였던 다른 컬렉터가 구입했는데, 이런 실수가 꽤 있었다고. 오랜 기다림 끝에 소장하게 된 작품도 있다. 바로 아래의 들라크루아의 L’amoureuse au piano이다. 그는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은 '전략' 때문이 아닌 순전히 '우연' 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컬렉션은 1995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프하 부부의 컬렉션은 여러 박물관에서 소장전의 형태로 만날 수 있었는데, 가장 최근 전시는 파리 쁘띠 팔라스(Petit Palais)에서 10월 4일까지 열리는 ‘La force du dessin’전이다.
컬렉터와 박물관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는 루이 앙트완. 그는 소장품의 미래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솔직하다. 초기에는 소장품이 루브르에 소속되길 원했지만 1848년 이후의 작품들은 오르세 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장품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전문가의 도움이나 조언을 얻는 다른 컬렉터들과 달리 프하 부부는 직접 보고 검증한 후 구매한 작품들이기에 긴 세월 확신을 갖고 지켜온 것으로 보인다.
대작을 그리기 전에 연습한 스케치, 시간을 들이지 않고 슥슥 그린 드로잉, 세밀하게 공들인 소묘와 유화 등의 완성작. 실제로 소장품의 형식은 제각각이었으나 일종의 공통된 분위기가 있었다. 릴케의 우아한 사색과 카뮈의 복잡하고 미묘한 길 잃음, 그리고 헤세의 몽상을 품은 그림들 앞에서 나는 오랜 시간 머물렀다. 누군가 컬렉터의 소장품은 컬렉터 자신이라 했던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순간을 소중히 하는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