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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1-02

01-02 / 나의 비극, 나의 재능

01/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그때 우리 반에는 눈썹이 무척 진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여자애가 있었다. 

그 애는 욕을 잘 썼다. 나는 괜히 찔리고 겁나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그 아이는 스스럼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해냈다. 나랑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몇 번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대화를 주도해 주었다. 나는 스몰토크에는 영 재간이 없어서, 어른이 된 지금도 뚝딱거리곤 하는데, 그 애는 어른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욕들을 섞어가면서, 웃으며, 자잘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다만,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왜 너는 깔깔 웃으면서도, 시원하게 욕을 하면서도, 눈은 금세라도 일렁일 것처럼 슬퍼 보였을까. 그 슬픔을 감추려고 일부러 욕을 섞어가며 말하는 것 같았다. 어렸던 나는 감정은 알아채고도, 명료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애의 어딘가 숨어있을 슬픔을 나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애가 거세게 화를 냈다. 같은 반 누구와 다투었던가. 다투는 일이야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상다반사인데, 그 애는 스스로를 불태워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비명을 지르고, 책상을 던지고, 의자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분을 냈다. 눈물을 사납게 흘러내렸다. 인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리 반 모든 학생들이 벙 쪄서 쳐다보기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규격 외의 감정을 마주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폭풍처럼 감정이 지나가고 나서야, 반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그동안 억지로 웃고, 억지로 욕을 하며 숨기고 있었구나. 그렇게 눈이 슬펐는데, 분명히 뭔가 쌓여있었겠지. 하는 생각이어서, 그 애를 이상하게 여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럽고 아쉽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다, 나는.

태생부터 너무 잘 읽어버린다. 

나의 타고난 비극이자 재능이다.     






02/

물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MBTI의 16가지 유형만으로 세상 모든 사람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나는 그랬다. 나라는 사람은 INFP의 특징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그중에서도 '감정에 민감하다'는 그 한 줄이 나를 정말 잘 설명해 냈다. 그래. 나는 감정에 민감했고, 지금도 민감하고, 아마 앞으로도 무뎌질지언정 그 능력이 절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 민감성'은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도, 교사로서 살아가는데 꽤 많은 도움을 주었다. 

ON/OFF가 안 되는 탐지기라고 할까, 배터리는 빨리 닳지만 그만큼 편리한 점도 있었다.  

 




초등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발령 대기를 하며 기간제 담임을 맡았었다. 김해 본가 근처의 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를 맡았다.

대개 3월 2일에 학기가 시작되지만, 교사들은 2월 중순부터 신학기 준비를 한다. 그때 몇 반이 될지도 랜덤으로 정하는데, 학생 명단을 접어 넣은 봉투를 무작위로 뽑아 정하는 방식이다.

24살의 신규 교사는 으레 동료교사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고, 작년에 5학년을 맡으셨던 선생님들도 내가 뽑은 학생 명단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그중에는 B가 있었다. B의 이름을 보자마자 작년 담임선생님이 한숨을 허파 끝까지 채워 푹 쉬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얘는... 너무 힘들었어. 엄마가 아이를 온실 화초처럼 키우려고 해.’


그러시고는 1년간의 고심을 한 호흡에 푸우, 다시 뱉어내셨다. 

나는 선배님의 마음을 전부 헤아리진 못했다. 무지하면 용감하리니, 나는 용감했다. 얼마나 까탈스럽고 공격적인 학부모든 간에, 나는 다 품어주고 보듬으며 하하 호호 웃는, 이상적인 교실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쉬지 않고 작동하는 감정 탐지기로 인해 남들보다 곱절은 더 빨리 소진될 미래를,

이때는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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