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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7

07 / 없는 것만 갈구하며

 

  내가 발령을 받고, V를 만난 지 2주 만에 전학을 갔다. 아마도 V의 부모님들은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멀리 가시진 않고, 근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와 V의 인연은 조금 허망하게 희미해졌다. 좋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조금 멍한 기분이었다. 그래, 가시겠다는데 가셔야지. 찾아오신 V의 아버님에게 작별인사를 올렸다.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고, 그냥 가시는구나. V도 안녕.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교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경계태세로 지내던 나도, 우리 반도, 이제 긴장을 곤두세우던 V가 떠나버려서 뭔가 붕 뜨는 기분이었다. 왜 V가 학교에 안 왔지? 하고 어리둥절한 아이도 있었고, 안도하는 아이도 있었고, 기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다 이해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별 일 없이 흘러갔다. 물론, 교실의 하루하루가 매번 쉬운 날들은 아니지만, 그 나머지 날들은 내가 감당해 낼 만큼만 힘들었다. V와 대치할 때의 서슬 퍼런 긴장감은 없었다. 평범한 날들이, 평범하게 흘러갔다. 


  그다음 해에 나는 6학년 담임을 맡았다. 다들 꺼려하는 기피학년이었다.

교감선생님께서 고양이 손 빌리듯 저경력인 나에게 부탁한 것도 있었지만, 나는 증명해내고 싶었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내 MBTI가 INFP이든 ESTJ이든, 뭐든 간에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학생한테도, 학부모한테도 이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전부 통제해낼 테다. 하는 마음으로 6학년에 지원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그 당시의 나는.

  나는 정말 진지하게, 그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있었다. 마키아벨리 본인조차도 1명의 카리스마 있는 군주보다는 여러 명이 이끄는 공화정을 선호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나도 강인한 한 마리 사자가 되리라, 하며 그의 마음을 오독했다. 


  그렇게 나는 발령 2년 차를 버럭이로 지냈다. 눈썹을 자주 찌푸리고, 화를 내고, 가끔 고함도 치며(이러면 안 된다.) 통제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실은 우스운 어른으로 여겨졌을 뿐이지만. 그 해 11월 ~ 12월 우리 반은 정말 통제불능 그 자체여서, 교실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좋아하다가도 미워하다가 막판에는 우습고 안쓰럽게 여겼을 것 같다. 사자탈을 쓰고 우는 양을 보면 다들 그러지 않을까. 그렇게, 정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루하루 출근하고, 기어이 버티며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그리고 3년 차, 2020년.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과 혼란에 빠졌던, (지금도 그렇지만) 그 해에, 내 마음도 혼란에 빠졌다. 나는 앞으로 어떤 교사로 살아야 할까. 내가 가진 다양한 가면 중 어떤 것을 쓰고 일하면 좋을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나는 계속해서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원하고 갈구했다.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어떤지도 모른 채로, 그저 막연히 내가 아니면, 아니기만 하면 좋은 교사, 좋은 교실이 되고 모든 게 잘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때 만났던 내 동학년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나에게 문제를 내 주지도, 해답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내가 혼자 끙끙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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