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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6

06/ 생존을 위해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고 말해주셨다. 사람이 아무리 거짓말에 능통하고 자신을 잘 꾸민다 해도, 눈은 결코 거짓말을 못 한다,라고 하셨다. 어릴 적에는 별생각 없이 들었다. 에이 뭐, 한국 사람들 눈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서양 사람은 좀 다르려나?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흘려들었다. 


  그때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V의 눈동자를 봤을 때였다. 맞았다. 눈은 절대 거짓말을 못 한다. 물론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봐 왔다. 총기 있고 맑은 눈, 화가 났을 때 흔들리는 눈, 슬플 때 일렁이는 눈, 우울할 때 탁해지는 눈 등등, 많은 사람의 별별 눈동자를 다 봐왔다. 그래도 공통점 하나는 사람의 눈동자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널뛰든 간에, 사람의 것이었다. 


  V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드라이아이스가 순식간에 승화하는 기분이었다. 섬뜩함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라 전신의 피를 차갑게 식혔다. 이질적인 무언가였다. 무언가 있긴 하다. 무언가 눈동자 속에, V라는 아이 속에 무언가 있긴 한데, 다른 학생들과는 규격 자체가 다른 무언가였다. 나는 이질적인 미지의 무언가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9살 어린이에게. 


  나도 안다. 이런 말들은 교사로서는 해서 안 되는 말이고, 건장한 청년이 9살 어린이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니,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이렇게 해도 옆 칸에서 푸흡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다만 나는 당신에게 물어볼 뿐이다. 당신도 한번쯤,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가? 열받게 하고, 화나게 하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나의 활동 반경, 쌓아온 아비투스 안에서는 절대 마주할 일 없었던 이질적인 무언가 만난 적 없었는가?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 온몸에서 경고 알람을 울리며, 모든 털끝이 삐죽 서게 하는 그런 사람. 없었다면 정말 다행이겠다. 나는 만났다. 


  V는 내가 담임으로 온 첫날에만 온순히 지냈다. 그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원래의 모습은 이러했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함께 있다가 친구의 손을 밟는다. 손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가위로 친구의 목을 콕콕 찌른다. 친구가 말대답을 하니까. 주먹으로 친구의 어깨를 온 힘으로 때린다. 친구가 말을 안 들으니까. 계단에서 친구를 두 손으로 민다. 내 앞에 있으니까. 

  발령 나흘 째, 우는 친구를 더 때리려는 V의 손목을 있는 힘껏 쥐고 막으며, 나는 절실히 느꼈다. 변화해야 함을. 


  이 변화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내 생활방식을 바꿔보고자 하는, 그런 고상한 시도가 아니었다. INFP며, 내향 감정이며, 양이며 사자며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 하나도 없었다. 서열 1위가 되어 통제해야지, 하는 바람조차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사치였다. V를 통제하지 않으면 나와 다른 학생들이 정말 죽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나와 다른 학생들의 생존을 위해 나에게 가장 부족한 기능, 통제와 체계를 내 안에서 싹싹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시급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 교실은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학부모에게 전화하기를 껄끄러워하던 내가, 매일 같이 V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드렸다. 상담이나 지도를 위한 전화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V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해냈는지, 하나의 감정도 없이 로봇처럼 알려드렸다. 이 또한 나와 우리 반의 생존을 위함이었다. 

 

  내향 감정의 전문가였던 나는, 나와 우리 반의 생존을 위해 바뀌어야만 했다. 내향 감정을 다루는 솜씨는 당장 V가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게 하는데 즉각적인 효과가 없었다. 내향 감정의 완전 반대편에 있는, 체계와 통제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급하게 필요했다.

  물론 내향 감정을 다루는 그 솜씨가 교실에 하등 쓸모가 없다,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그 솜씨는 분명 누군가에게 큰 구원이 될 것이다. 분명 쓸모가 있고, 쓰임이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 반의 V에게는 쓸모도 쓰임도 없었다. V의 눈동자는 자신의 기원 그 자체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분명 팔, 다리, 머리, 얼굴, 하는 말까지, 나는 끝내 V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반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해와 공감보다는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장 잘 해내는 ‘내향 감정 다루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내가 가장 못하는 ‘체제를 세우고 통제하기’를 허겁지겁해냈다. 모든 학생들의 자리를 1줄로 만들어 짝을 없애고,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대관령의 폭설보다 더 차갑게 분위기를 얼렸다. 역할을 만들고, 규칙을 급조해 냈다. 물론 이것이 ‘체제 세우기’의 바른 모습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나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나는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속이고자 했다.

나 자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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