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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5

05/ 양은 군림하는 사자를 꿈꾸는가

05/


INFP 성향의 사람들이 잘 다루는 것은 ‘나의 생각, 감정, 가치’이다. 


학자 John Beebe의 8 기능론에 따르자면, 이른바 ‘내향 감정’을 다루는데 INFP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지 자주 생각하며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더라도, INFP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모든 생각, 감정들을 부검해 낼 수 있다. 풀어내고, 이해해 낼 수 있다.      


INFP에 적합한 직업으로 심리상담사, 예술가가 포함된 것이 그런 연유다. 

누군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한다면, INFP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되어줄 수 있다. INFP 그 자신도 매일 스스로 만든 복잡한 미로를 드나들며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며 생각만 하되 표현해보지 못했을 나만의 그 감정, 그 행동들도, 누군가는 글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기어이 담아낸다. 그 ‘내향 감정’을 다루는 직업이 예술가이고, INFP는 그 ‘내향 감정’을 다루는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초등교사로서 일하는 데에도 의외의 큰 장점이 된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는 채 느끼고, 모르는 채 반영하여 행동할 때가 있다.      

예전 우리 반의 어린이, E를 예로 들어보겠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말을 끊어내고,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이유’에 대해 기어이 말을 해내고, ‘선생님도 모르는 게 많으시네요’라고 말을 끝맺어야 만족하는 어린이가 E였다. 

그냥 훑어보면, E는 버릇없고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사업으로 맞벌이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쁘신 부모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여유 있게 들어주지 못해서 홀로 느끼는 외로움이 보인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고, 관계의 결핍으로 인한 갈증을 지적 우월성으로 대체해 내려는 간절함이 보인다. 미로 깊숙이 들어가 그 감정들을 보고 나면,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미워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타고난 이 재능, 감정을 기어이 찾고 읽어내는 이 재능을 활용하는데 4년은 걸렸다. 작년까지 나는 이 재능이 교실에서는 약점이고 불필요한 것이라 느꼈다. 어리고 어렸다.     

     



4년 전, 2018년 9월, 나는 9월 중간 발령을 받았다. 

발령이야 4월에도 7월에도 언제든 날 수 있는, 통상적인 일이지만, 내가 갈 학교에 자리가 생긴 이유는 특이했다. 내가 들어갈 반의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명예퇴직을 하게 되어, 티오가 1자리 생긴 것이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마산으로 왔다. 미리 교무실에 인사드리러 가니, 당시 교감선생님이 미리 언질을 주었다. 


선생님, 그 반에 아이 한 명이 아주 엄청납니다. 

- 무슨 말씀이신지요.

V라는 남자애 하나가, 아주 폭력적이다. 전에 계시던 담임선생님도 한 학기 동안 갖은 방법으로 애를 쓰다가 도저히 안 되어 퇴직을 결정하셨다.

- 아, 그러셨습니까. 걱정이네요.


걱정은 무슨.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남한테 말은 못 했지만, 사실 내심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수동공격으로 나도 학생들도 갉아먹던 B에게서 멀리 떠나고 나니 후련했다. 으휴, 이제 장문의 문자를 받을 일도, 보낼 일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홀가분했다. 다만 떠난 것이 즐겁다는 말을 남들에게 하기에는 꽤 부끄러워서, 말없이 마음속으로 춤췄을 뿐이다. 


그러고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나 뵈었다. 다들 걱정과 관심과 위로의 조언을 해주셨다. 그 반에 V라는 애가 정말 힘들다. 친구를 가위로 찌르고 계단에서 밀치고, 수업시간에 뛰쳐나가는 건 예사고, 운동장 개수대에서 샤워를 하는 아이다. 선생님, 첫날부터 무섭게 잡아야 해. 호락호락하게 보이면 안 돼. 카리스마를 보여야 해.     


아, 내가 바라 마지않던 그 말이다.


나는 지난 한 학기, 학생 B와 그 학부모의 하인으로 지내는 것에 신물이 나다 못해 담즙이 매일 같이 콸콸 역류하고 있었다. 더 이상 순한 양처럼 보송하게 살지 않으리, 나는 사자가 되겠다. 못 할 게 무어냐.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잡아먹히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말랑한 담임으로 여겨지며 교실의 통제력을 잃을 바에야 차라리 부러져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통제, 통제를 갈구했다. 무섭고 차갑게 보여야 한다. 내가 서열 1위가 되어야 한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해야 한다. 내가 군림한다. 이 생각만으로 나는 사자탈을 뒤집어쓰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어렸다. 어리고 어리석은 나였다.     


물론 교사는 학생들을 통제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도와야 할 때도 있다. 교실에 통제 시스템이 하나도 없다면, 그 교실은 아슬아슬한 모래성이 되어버린다.     

다만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잘 못하는 영역에서 필요 이상으로 안간힘을 썼던 점이다. INFP의 가장 약한 분야가 바로 ‘통제와 체계’ 영역이겠다. 나는 내 강점을 가다듬어 교실에 활용하지 못하고 나에게 가장 약하고 모자란 부분을 맹목적으로 좇았다. 하늘을 잘 날아다니는 새가 억지로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연습한다고 얼마나 잘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자를 동경했다. 양으로 태어난 내가 억지로 발톱을 기르고, 이빨을 갉아 날카롭게 만들고, 으르렁 소리를 내보고자 애를 썼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정 반대편에서 나 자신을 찾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렇게 나는 양도 사자도 아닌, 이상한 곤죽 같은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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