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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8

08/ 결국 만나야 할 사람

08/


결국 나는 나 자신과 만나야만 한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몇십 년 뒤든, 언젠가는 꼭.

우리 교사에게는, 지켜야 하는 루틴이 있다. 특히 초등교사라면 더욱. 학생들이 늦어도 9시까지는 다 왔는지 확인하고, 연락 없이 못 왔다면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학생에게 어제 없던 흉이나 상처가 보이면 물어보고, 40분 동안, 하루 4~6번은 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급식소에 인솔하고, 집에 가기 전 자기 자리는 조금이라도 치우도록 지도하고, 알림장을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에 업로드하고... 등등. 일상이 일상으로 이어지도록 꾸준히, 가능하다면 일관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교사인 나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해내야 할 일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톤’을 기복 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오늘 아침 기분이 너무 좋아 설레고 들떠도, 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욕을 하면 봐주지 않고 차갑게 지도해야 하고. 내가 울적하고 지쳐도 음악 시간에는 알레그레토에 맞추어 경쾌하게, 함께 노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어떤 책 제목처럼, 내 내면의 생각과 기분이 외면적인 태도가 되지 않는 게 내 일에서는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로서 지내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들이 온다. 지나치게 충격적인 사건이 생긴다. 내 에너지를 몽땅 뺏어가 버리며, 내가 겉으로 꾸며내던 ‘평범한 톤’을 무너뜨리는 그런 사건이 생겨버린다. 이것은 삶에서는 피할 수 없는 관문과 같은데, 나는 특히 생각이 많고 예민하여 더욱 자주 느꼈던 것 같다.

2020년, 나와 함께 동학년을 맡았던 동료 선생님 두 분이 계셨다. 두 분 모두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셨다. 한 분은 선배님, 한 분은 내 후배였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나와 반대인 면모를 많이 갖고 있었다. 외향적이고, 활발하고, 좋은 의미로 세상을 가볍게 바라보며 보는 내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과 연구실에서 이야기할 때는 
신기하면서도 즐거웠다. (나는 정말 즐거웠는데, 그분들도 그러셨겠지? 부디 그러셨길)

나는 교실에서 목소리 톤을 낮은 도에서 파# 정도까지 억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 그분들은 첫 음부터 솔에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경쾌하고 밝은 분들이었다. 다만 그들도 가끔은 사건들을 마주하곤 하셨다. 당장 교실에서만 학생 스무 명이 넘는데, 수많은 감정들이 오갈 테고, 부딪치다 보면 필연적인 일이겠지.

인상 깊었던 점은, 그 선생님들이 사건을 마주하는 자세였다. 그 선생님들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톤을 적당히 변주할지언정, 꾸며내지는 않았다. 학생들끼리 서로 다투면 솔직하게 화내고 또 보듬어주셨고, 교사들 간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솔직하게 말하고 풀어내셨다. 그 모습은 내가 살아가는 자세와는 꽤 달랐다. 나는 학생들, 동료교사가 아무리 나를 속상하게, 화나게 해도 머릿속에는 ‘그래도 교사니까, 감정을 숨겨야지, 엄격하고 차갑게 행동해야지. 얕잡아 보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러다가 내 에너지가 바닥나면 결국 꼬이고 꼬여버려서 학생들에겐 화를 더 심하게 버럭 내고, 동료교사에게는 더 숨기고 끙끙 앓고, 그러다 혼자 후회하고, 그랬었다. ‘평범한 톤’을 기어이 유지하려다가 제 풀에 지쳐서 평범함과 더 멀어지곤 했다.

결정적인 사건을 맞닥뜨리면, 자기 본모습을 토대로 해결해 가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물론 페르소나도 좋지만, 사용하는 빈도가 중요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에 100% 페르소나만 쓰고 대한다면, 버티질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만 했다. 진짜 내 마음은 어떤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도망치는 것도 가끔은 좋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페르소나며 꾸며낸 톤이며 다 벗어버리고, 오롯이 솔직한 내 마음을 기초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늘 걱정이었다. 내가 내 마음에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부정적인 마음일 때는 너무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나도 남들도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동료교사들에게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참고 그랬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만난 동학년 선생님 두 분이 신기했고, 그들의 삶의 자세가 마음속에 늘 남아있었다. 그들의 솔직한 자세를 보고도 처음에는 다소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뭔가 직감적으로, 그때 본 그들의 모습에 뭔가 단서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까먹지 말자, 언젠가 나의 고민에 도움이 될 단서일 테다. 하는 생각에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나로 살아야 하는구나. 최근에서야 나는 억지로 사자 가면을 쓰지 않기로 했다. 물론, 필요할 때 가끔은 쓴다. 학생들이 위험하게 햄버거 놀이를 하면, 나는 목소리가 커지고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다. 서로 욕을 하거나 때리는 일이 생기면 학생들을 불러서 차갑고 단호하게, 그건 네 잘못이야. 그러지 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다음에 손을 잡고 말해 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너를 좋아한다.

잘못은 너의 행동뿐이지, 너라는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니까. 그래도 너를 계속 좋아할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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