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점심시간,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로 올라가려는데, 애들 몇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말했다.
선생님, 거미가 다리가 다 빠져서 아파해요.
거미는 학교 화단에 당연히 있을 법한데, 다리가 다 빠졌다니?
몇 초간 멍했다가 이윽고 이해하고,
아니길 바라며 따라가 봤다.
거미 하나가 줄에 매달린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정말 다리가 없었다. 나보다 다리가 4배는 더 많았을 텐데, 하나도 없이 머리가슴과 배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아, 사람한테 당했구나.
어린아이라고 해서 마냥 천진하고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적당히 순수하니까 별다른 이유 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거미줄에 늘어져 대롱거리는 거미 다리를 보며 생각했다.
아, 오늘 내가 해내야 할 일은 이것입니까. 만약 신이 계시다면 오늘도 꽤 잔인하십니다. 나에게 시키시는군요.
학생들은 못 보게 멀리 보냈다. 나는 벌벌 떠는 거미를 양손으로 잡아 머리가슴과 배를 잡아 순식간에 비틀어 죽였다.
죽여주었다.
바로 아래 화단에 흙을 파내고, 머리가슴과 배와 다리를 모두 모아 묻어주었다. 그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학생들과 교실로 돌아왔다. 일하는 시간이었고, 이때 나에게는 거미를 애도하는 것보다 학생들과 6교시 수업을 해내는 쪽이 더 중요했다.
다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거미에게도 뇌는 있고, 그렇다면 통각도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새끼손가락 하나 골절되는 것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봐서 안다. 팔다리가 다 뜯겨나간다면, 그저 감당 못할 고통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그래서 빨리 끝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아이들한텐 쉽지 않은 일이고, 시킬 생각도 전혀 없었다. 저 병아리들에게는 조약돌만큼의 죄책감이라도, 절대 얹어주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가기엔 거미가 너무 세게 떨고 있었다. 결국 내가 해내야 했다.
다만 나에겐 자격은 없었다. 나는 자격 없이 나 혼자만의 선의로 거미를 두 동강내고 묻어주었다.
내가 해낸 선택이 그 거미의 아픔을 최대한 빨리 끊어줄 수 있었을까? 내가 알 길은 없다.
그저 나는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고통을 아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냈다.
오늘 그 순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