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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사랑은 멈칫하는 일

학교 이야기


우리 반에는 남학생 Y와 여학생 S가 있다.

Y는 천성 타고난 경상도 남자이면서도, 플러스 알파가 있는 멋있는 친구다.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이끄는 역할을 타고났다. 목소리가 크면서도 적당히 굵고 낮다.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늘 몸을 날려 잡아낸다. 친구가 어딜 다치면 먼저 가서 물어봐주고, 자기 생각에 아니다 싶은 일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줄 아는 아이다. 나는 남자 중에서도 소수종이었는데, 그래서 Y를 보면 괜히 부럽고 뿌듯하고 그랬다.

S는 온순한 토끼 같은 아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늘 조곤조곤 말하고,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 없다.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가 나를 속상하게 하면 발길질 한 번도 못하고, 울면서 나에게 찾아오는 그런 여자아이다. 그 아이 속에서 내 모습도 조금 보이고,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부드러운 결을 지닌 아이라 속으로만 내심 귀여워하는 여학생이다.

그런 Y와 S가 1학기 때 갑자기 가까워졌다. 물론, 어린 3학년 아이들이라 남녀 간에 쭈뼛대고 괜히 괴롭히고 놀리는 그런 것들이 있지만, Y와 S는 뭔가 다르게, 서로 조심스레 가까워졌다. 둘 사이의, 뭔가 다른, 무엇인가 따뜻하게 이어진 실 하나를 나 혼자만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복도를 지나면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Y가 S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히야, 요 녀석. 좋아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구나, 너 나보다 낫다. 하고 생각하며 모르는 체했다.
2학기가 되고, 겨울이 되고서는 둘이 이어져 있는지 어떤지 몰랐다. 1학기에 비해 서로 데면데면하고, 대화를 하는 모습도 거의 못 봤다. 그렇게 나도 잊어버린 채 여러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여 나와 스포츠강사님이 심판을 봤다.
그때 나는 봐버렸다.
Y가 외야에서 공을 잡았는데, 바로 눈앞에 S가 서 있었다.
정말 톡 건드리기만 해도 아웃시킬 수 있는 그 순간에, 나는 봤다.
Y가 S를 향해 던지려다가 멈칫, 하고 그대로 멈춰버린 그 찰나를.

굳이, 정말 굳이 옆을 휙휙 돌아보고 Y는 공을 다른 친구에게 던졌다.


아, 여전히 너희 둘
은 이어져 있구나.

좋아한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싶다.
당연한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멈칫하는 것. 정말 어쩔 도리가 없이 멈칫 하는 일.
그게 사랑이 아닐까.
아주 소중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어서, 부끄럽고도 내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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