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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2. 2023

머리를 빗어주는 일

학교 이야기


우리 반 아이들과 나는 아침 시간에 함께 책을 읽는다. 8시 40분 ~ 9시까지.

물론 아침부터 책 읽는 일이 힘든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멍하게 앉아있거나 색종이를 만지작거려도 모른 척해준다.

나도 책을 아무거나 골라 읽으며 아이들 책상 사이로 걸어 다니면, 아이들 머리가 정말 손에 닿기 알맞은 높이에 있다. 참새는 방앗간을 들러야 하고, 나도 강아지가 보이면 쓰다듬어야 하는 사람이라(...) 남학생들만 머리를 자주 쓰다듬는다. 여학생들이 싫은 건 전혀 아니다. 다만, 이성 간에 접촉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윽, 우리 선생님 그때 뭔가 기분 나빴어'라는 생각을 만들까 봐 조심한다. 여학생의 손을 잡지 않고 옷깃을 잡는 정도까지만.

그런데 쓰다듬다 보면 가끔 새 둥지를 머리에 만들어오는 남학생들도 있다. 10살 아이들이니 아침잠이 많은 게 당연하고, 그래서 급히 오느라 그랬겠지. 나는 그런 모습도 너무 귀엽지만, 내가 귀여운 거랑 별개로 빗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친구들이 놀릴까 봐 걱정도 조금 있었고.

그래서 월요일에 집에 있는 빗을 가방에 넣어 가져와놓고서도, 막상 가져오고 나니 강아지들 머리가 아주 차분한 것 아닌가! 쓰다듬기에는 무척 좋았지만, 이번은 기회가 아니군... 하면서 빗을 내 책상에 두고 다녔다.

그러다가 엊그제 금요일, 우리 반의 H가 새 둥지를 머리에 이고 왔다. 요 녀석은 내가 특히 귀여워라 하는 남학생이다. 눈썹이 진하고, 눈이 반짝거리고, 내가 준비해 온 수업 활동에 늘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한다. 친구들과 놀 때에도 천진난만하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남을 상처 주지 않는, 그런 결을 지닌 아이다. 그래서 너무 좋아하지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어서 가끔 몰래 간식 몇 개를 더 주곤 했다.


(우리 반 남학생 H. 눈썹이 진하고 눈이 반짝거리는데, 밤톨이 같다.)

그래서 금요일에 참지 못하고 H를 불러 머리를 빗어줬다. 다행히 아침 일찍이라 보는 친구들도 몇 없었다.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리고 빗어주니 뭔가 H도 나도 쑥스러웠는데,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옆에서 보던 우리 반 똑똑이 여학생 S가 아빠 같다며 크크 웃었다. 흐흐.

교사라는 직업은 이런 점이 정말 큰 장점이다. 매일 만나는 손님들이 무척 귀엽다. 그 귀여운 손님들을 어루만지는 추억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것.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 직업은 직업일 뿐이고,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에게 교직은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물론 매일 이렇게 행복하지는 않고, 마음이 지칠 때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H의 머리를 빗어주는 순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쳤다가도 다시 힘이 난다. 이런 순간들이 나를 교사로서 즐겁게 살아가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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