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야 Feb 02. 2023

랜덤 망나니

단편소설

  [Web발신] 귀하께서는 금일 13시 00분 집행되는 20XX.5.21.선고 20XX도32728사건의 피고 박XX의 사형에 무작위 선출된 집행인입니다. 집행 1시간 전까지 집행실에 입실하셔야 하오며, 집행 자진 포기는 금일 11시 00분까지 가능하오니...

  

  상일은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켰다. 오늘 1시까지 서부집행소로 오라는 문자였다. 당연히 가지, 내가 왜 포기해. 상일은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작년부터였다. 사형 집행을 다시 시작하라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게. 아동학대, 묻지마 살인, 성범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등, 무엇 하나 끔찍하기로는 둘째 갈 수 없는 강력범죄들이 꾸준히 일어나는데도 그에 대한 처벌은 십수년의 징역이 최대였다. 수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솜방망이’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또는 법원, 헌법 재판소, 국회의사당 등등 여러 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수 개월이 지나서, 마침내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고, 입법되었다.     


  무작위 집행인제.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형을 시작한다는건 곧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매달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교정직 공무원, 교도관들이 그 일을 해야겠으나, 이것도 쉽지 않았다. 저는 교정을 하는게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건 제 일이 아닙니다. 소신있게, 하지만 겁에 질려서 눈물을 흘리며 한 교도관이 뉴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수십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교수대에 직접 손을 대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교도관 중에는 말이다. 그리고 인권단체의 무수한 공격에, 결국 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무작위 집행인제. 시민들 중에 무작위로 몇 명을 뽑아, 그중 동의한 사람 3명이 사형 집행인이 되는 것이었다.     


  상일은 3주전, 무작위 집행인에 선출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잠깐의 고민도 없이 바로 기꺼이 승낙하였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흉악한 놈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은 이미 선을 넘은 놈들이었다. 한 만큼 되받아야 하며,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로워진다는 믿음이 상일에겐 있었다. 다섯 번, 자진 포기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상일은 꼭 내가 집행하겠다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오늘 13시에 무작위 집행인제를 통한 사형 집행이 있겠습니다. 3달 전부터 시작하여 오늘로 일곱 번째 집행입니다. 이로 인해 강력 범죄율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경찰청의 보고가 있었으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집행에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95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상일은 TV에 틀어둔 뉴스를 들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 이런게 정의다. 이래야 맞는거지. 상일은 자신이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만족감이 온몸으로 따뜻이 퍼져가는 걸 만끽했다.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유있게 나서도 되겠군, 멋있게 차려 입고 나가야지. 상일은 생각하며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상일이 서부 집행소에 도착한 건 열한 시 반을 조금 넘긴 때였다. 두어 번 밖에 입지 않아 거의 새 것 같은 진청색 정장과 새하얀 셔츠를 입고, 새로 산 군청색 넥타이를 맨 상일은 당당하면서도 여유롭게 집행소 정문을 향해 걸었다. 정문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채 집행소 건물을 쳐다보는 여자가 있었다. 꽤 어려보이는 얼굴, 부스스한 검은 머리는 대충 묶어 잔머리가 많이 삐져나왔고 야윈 듯 보였다. 상일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상일을 바라본다.


  “혹시, 오늘 집행하러 오신 분이세요?”

  “아, 네. 열두시까지 오라던데. 그쪽도...?”


  여자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다. 

  “하고싶었는데, 저는 하고싶어도 못해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일이 그녀를 계속 쳐다보자,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피해자의 가족이라서요.”


  상일은 순간 머리가 차갑게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시선을 이곳 저곳 옯기다가 그녀의 입술 아래 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짓고는, 이윽고 고개를 푹 숙였다. 상일은 일순 동정심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이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이 사람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여기 온 것이다. 상일은 돌연 들끓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또렷이 힘주어 말했다.

  “제가 되갚아 주겠습니다. 기필코. 그게 정의니까요.”

  그녀가 얼굴을 들고 상일을 쳐다본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 이윽고 그녀는 살짝 미소짓는다.

  “감사해요. 당신은 옳은 일을 하는거에요.”

  상일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포대기에 업힌 아기를 쳐다본다. 세상 모르고 곤히 잠든 아기를 보며 상일은 더욱 강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상일은 손을 뻗어 아기 머리를 쓰다듬는다.

  “예. 그런 범죄자들을 없애고 사회를 더 안전하게...”

  차갑다. 체온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쇳덩이를 만지는 듯 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움이다. 아기가 이렇게 차갑다고? 상일은 당혹스러워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서 상일을 쳐다본다. 상일이 무어라고 말하려 입을 여는것과 동시에, 그녀가 급히 내뱉는다.     

  “우선순위 알파. 코드 브라보-알파-찰리-킬로. 직전의 수행 목표로 돌아가도록”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자 상일의 목이 푹 꺾어져 고개를 떨군다. 잠시 후 상일은 병정처럼 꼿꼿이 차렷 자세를 하고는, 얼굴만 옆으로 돌려 서부 집행소를 바라본다. 이윽고 몸통, 팔, 다리가 서부집행소를 향해 돌아간다. 척, 척, 척. 상일은 정문을 통해 들어간다.          

  



  상일이 1층 대기실에 도착하자 거의 열두시가 다 되었다. 상일 말고도 두 사람이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머리가 조금 벗겨진 남자 한 명, 갓난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 온 여자 한 명. 새하얀 책상과 회색 의자가 일체형으로 붙어있는 것이 줄지어 스무개 정도 놓여있었다. 상일은 맨 앞자리에 앉았다. 대기실 맨 앞에 서있던 공무원이 컴퓨터를 조작하더니, 스크린에 글자가 떴다. 무작위 집행인제를 통한 사형 집행 전 안내, 라고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떴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여기 모이신 세 분께서는 금일 20XX.5.21.선고 20XX도32728사건의 피고의 사형을 13시에 집행하시겠습니다.” 공무원이 말했다.

  “해당 피고는 아동학대, 납치 및 살인죄로 입건되었으며, 피해자는 9세 남아였습니다. 실종 신고에 따라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고, 다음날 새벽에 체포했습니다.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상고하였습니다. 3심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피해자 가족을 모욕하여 최종적으로는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쓰레기 새끼. 상일은 낮게 읊조렸다. 

  “여러분께서 피고를 직접 맞닥뜨릴 일은 없습니다. 12시 50분이 되면 집행실 바로 옆 방으로 들어가서, 불투명 창으로 피고를 보시게 될 겁니다. 그 방에는 레버가 3개 있는데, 한 분에 하나씩 레버를 당기시게 될 겁니다. 동시에 당기시면 바닥이 꺼지면서, 집행이 시작되는 겁니다.”

  옆에 앉은 중년 남자가 물었다.

  “왜 레버가 세 개입니까?”

  “진짜 레버가 어느 것인지 모르게 하여, 죄책감을 덜게 하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일을, 죄책감이 들겠나. 저런 쓰레기를 없애는데 무슨. 상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50분까지 대기해주십시오. 50분이 되면 안내하겠습니다.” 

  공무원이 방을 나갔다. 세 명만 대기실에 남았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상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곧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들뜬 마음에 상일은 당장이라도 레버를 세 개 다 혼자 내려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까 안내해준 공무원이 다시 들어왔다.

  “이제 집행 10분전입니다. 모두 집행실로 모시겠습니다.”

  끼긱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 일어섰다. 상일이 세 명 중 제일 앞장서서 따라갔다.     

  “들어오시지요.”

  

  안내받아 들어온 방은 비좁지만 네 다섯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만 했다. 세로로 길고 좁은 방에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유리창 아래에는 레버가 세 개 있었다. 반대편 벽은 새까만 색이었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푸른 죄수복을 입은 사형수와, 신부님으로 보이는 사람과, 교도관 몇 명이 옆에 서 있었다. 피고 바로 앞에는 밧줄이 동그란 고리 모양으로 묶여서 늘어져 있었다. 말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유리창 너머로 사형수가 보였다.      

  - 재는 재로, 흙은 흙으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을지언정, 온 몸으로 속죄하는 그대에게 끝내 평온과 안식이 깃들기를. 아멘.

  - 야이 개새끼야. 개지랄까는 소리 집어쳐. 씨발, 살려달라고! 살려줘. 살려달라고...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살려주세요! 엄마, 엄마! 신부님! 할아버지, 엉엉,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왜 씨발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냐고! 아니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으허엉. 제발. 제발...     

  그는 덜덜 떨고 있었다. 욕지거리를 내뱉고,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용서를 구하고, 덜덜 떨며, 엉엉 울었다. 그의 머리, 팔, 다리, 손, 몸통, 어느 곳 하나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교도관이 그의 목에 밧줄을 걸자, 그는 더 크게 울부짖었다. 그의 얼굴에 마대가 씌워졌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스피커로 그의 구걸이 계속 들려오다가 이윽고 쌕쌕 거세게 내쉬는 숨소리만 들렸다. 상일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해도 될까. 작은 의구심이 상일의 마음속에, 작지만 확실히, 파문을 일으켰다.     

  “레버를 잡아주세요. 셋을 세면 동시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내가 해도 될까. 내가 죽여도 되는 걸까. 물론 저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그런데 내가, 내가 이걸 당기면. 나도 살인을 하게 되는건데. 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데.      

  셋.     

  정의를 위한거긴 한데. 저 꼴을 봐. 저 놈은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곤 덜덜 떨며 숨을 몰아쉬는거 밖에 없다. 내가, 내가 해도 되나? 나는 지켜야 하는데.     

  

  둘.     

  상일의 호흡이 가빠졌다. 후우, 후우. 숨소리가 빨라진다. 저놈은, 저놈은 한창 어린 초등학생을 납치하고 죽인 놈이다. 그런 놈은 죽어 마땅하다. 어디서 감히, 감히, 보호받고 이쁨받아도 모자랄 어린아이를, 죽여야 한다. 맞다. 죽어 마땅하다. 근데, 나는. 지켜야.     


  하나.     


  내가 해도 되나?     


  철컥,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레버 두 개가 동시에 내려간다. 바닥은 꺼지지 않았다. 사형수는 아직도 숨을 헉헉대며 어깨를 들썩이는데, 두 발은 바닥에 붙어있다. 상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상일의 레버가 진짜였다. 모두가 상일을 쳐다본다.      


  나, 나는. 이러면. 안. 안돼.     

  상일이 꺽꺽거린다. 탄 냄새가 난다. 상일의 머리에서 연기가 난다.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빵,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난다. 상일이 쓰러진다.           




  “케이스 F, 케이스 F, 실험체 상일에 논리 오류 발생. 실험 중지.” 레버를 잡아당긴 남자가 말한다. 모든게 멈춘다. 레버를 잡아당긴 나머지 두 사람을 제외하고. 유리창 너머 사형수, 신부, 교도관, 모두 멈춘다. 그것들 모두가 다 로봇이었다. 정지 코드를 입력받고, 모두 행동을 멈춘다.

  “염병, 잘 되는가 싶더만 또 이러네.”

  “선배님, 마이크가 켜져있어요.” 

  “몰라! 씨발, 이번엔 컨디셔닝도 잘 했는데. 캐릭터 설정도 문제없었잖아. 정의감 강하고, 감정적이고, 책임감 투철하고! 이번 달에 버린 로봇만 몇 개야.”

  새까만 벽이 투명해진다. 뒤에서 매직 미러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뭐라고 말하며 바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럴거면 그냥 드론들 보고 레버 당기라고 하면 되잖아.” 레버를 당긴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러려면 사람이 조작해야 하고, 결국 사람이 죽이는게 되니까요.” 레버를 당긴 여자가 대답했다.

  “로봇들한테 인명 보호 코드를 최우선으로 넣으랬잖아? 사람 지키는 깡통들이 어떻게 사형을 해.”

  “그래서 열심히 홀렸는데, 가짜 뉴스도 틀어주고, 내가 직접 응원도 해주고... 그래도 안 되네요.”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포대기를 벗었다. 갓난아기 로봇을 바닥에 대충 얹어두고는, 문을 열었다.

  “일단 점심 먹고 다시 해봐요, 선배.”

  “...그래.”

  남자는 마지막 레버를 휙 당기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여자와 함께 방을 나선다.

  덜컹, 소리와 함께 유리창 너머에서 바닥이 꺼진다.     

  상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 CPU가 터져버렸기에, 말 할 방법도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Waste Tast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